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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층에 20시간 갇힌 노인의 ‘SOS’ ...창문 밖으로 내걸은 종이상자

아파트 공화국...아파트가 편리하긴 하지만, 자칫 신경을 덜 쓰면 뜻밖의 상황에 부딪치게 되어....

김영미 | 기사입력 2024/01/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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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층에  20시간 갇힌 노인의 ‘SOS’ ...창문 밖으로 내걸은 종이상자

화재 대피공간에 갇혀 도움을 요청한 긴급 신호

맞은 편 동 거주 주민의 신고로 경찰 출동, 구조돼...

 

[yeowonnews.com=김영미 기자] 지난달 1일 오후 1시쯤. 인천경찰청 112 치안 종합상황실로 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인천 ○○아파트인데요, 맞은편 동 외벽에 ‘SOS’라고 쓴 종이랑 밧줄이 걸려 있어요!”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근무자는 곧바로 “현장 사진을 좀 찍어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도착한 사진 속엔 고층 아파트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종이 한 장이 찍혀 있었다. 거기에는 신고자의 말대로 ‘SO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아파트 맞은 편 동(棟)에 걸린 SOS 긴급 신호가....   © 운영자


소동이 빚어진 곳은 인천 미추홀구 도화동에 위치한 한 고층 아파트였다. 당시 도화지구대 소속 경찰관 7명은 상황실로부터 최단 시간 안에 출동해야 하는 ‘코드1′ 지령을 전달받은 뒤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 후에는 관리사무소의 협조 아래 ‘SOS’ 구조를 요청한 집을 신속하게 찾기 시작했다. 15층부터 세대마다 초인종을 눌렀고 주민들의 빠른 응답 덕에 어느덧 28층까지 올라가게 됐다.

 

그러던 중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집이 나왔고, 경찰은 즉시 세대주를 확인했다. 이어 집주인 아들에게 연락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현관문을 열었다. 안방과 화장실 등을 아무리 뒤져봐도 작은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부를 수색하던 중 주방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화재를 대비해 만들어진 2평 남짓한 좁은 대피 공간이었다.

 

 

“여기요, 여기요.”

 

경찰이 손잡이를 뜯어내고 문을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속옷 차림의 70대 남성 A씨가 서 있었다. 괜찮냐는 경찰관 물음에 A씨는 “추워서 얼어 죽을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은 이랬다. A씨는 전날 오후 5시쯤 환기를 위해 대피 공간에 들어갔다가, 문이 잠기는 바람에 20시간 넘게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휴대전화조차 챙기지 못해 한겨울 추위를 맨몸으로 버텨야했던 것이다.

 

망연자실했지만 언제까지고 포기한 채 있을 수만은 없었다. A씨는 주변에 있던 검은색 상자와 칼을 보고 이웃에게 구조를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자의 검은색 종이 부분을 칼로 긁어 ‘SOS’ 글자를 만들었고 줄을 연결해 창문 밖에 내걸었다. 또 라이터를 켰다가 끄기를 반복해 불빛을 내기도 했다. 바로 이 모습을 어느 한 이웃이 지나치지 않고 신고해 준 덕분에 A씨는 무사히 발견될 수 있었다.

 

이 사연은 29일 경찰청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며 약 두 달 만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출동한 한 경찰관은 연합뉴스에 “출동 지령을 받고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33년 동안 근무하면서 이런 신고는 처음이었다”며 “잘 보이지도 않는 고층 아파트 창문에 붙은 ‘SOS’ 글자를 맞은편 동 주민이 보고 신고했다. 젊은 남성분이었는데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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