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칼럼

아내여, ‘사랑의 날’을 제정․선포하자

남편이 곁에 오지 않는다고 억울해 하느니 보다는 '사랑의 날'을 정하는 것이 현명한 아내의....

김재원 | 기사입력 2024/01/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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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여, ‘사랑의 날’을 제정․선포하자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라

사랑은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주는 처방전이다

 

[yeowonnews.com=김재원] 피어 있는 라일락 가지 끝에 달이라도 뜨는 밤이면, 또는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얘진 밤이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아내여, 그런 밤이면 터질듯한 슬픔을 시(詩)로 쓰고 싶어 잠 못 든다는 아내여.

 

▲ 왕년이 인기 TV드라마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 운영자

 

몽울졌던 장미가 그 탐욕스런 꽃잎들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몸을 떨 때, 아내여 당연히 우리들은 사랑을 이야기해야 옳다.

 

계절은 바꾸는 것이고, 바뀔 적마다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여, 우리들의 사랑은 봄이 와도 새 순이 돋지 않는다면, 몸서리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이미 고목나무에 꽃 피우기도 안 된단 말인가?

 

남편은 식곤증을 호소한다. 봄 때문이 아니라, 뜻대로 안 되는 직장, 뜻대로 안 되는 세상 때문에 소주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은 식곤증을 호소한다.

봄은 묵은 사랑의 순서를 새 순서로 바꾸는 것이고, 봄은 묵은 감정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같은 밤의 사랑이라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라고 라일락 꽃은 취할 정도로 휘청하게 우리의 코끝을 파고 들지 않는가?

그런데 남편은 피로하다고 호소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작년에도 승진이 안 된 남편은, 계절이 바뀌어도, 말만 잘못 걸어도 고함을 칠 정도로 험악한 얼굴을 하고 대문을 들어선다.

 

그렇다고 겁낼 것은 없다. 사랑은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는 처방을 지니고 있다.

그 처방은 단 두 사람만의 문제이지, 어떤 논리로도 해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선, 남편과 아내 사이에만 깃든 미신이라고 불러도 좋다. 

날짜를 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짜고짜로 ‘여보, 우리 사랑의 날을 정해요’했다간 주책 떤다는 소리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절대로 화 안 내는 날’을 제정하는 것이다. 그 ‘화 안 내는 날’제정 공포식에는 전가족이 참석하여, 손뼉치며 노래라도 부르며 기념하면 더욱 좋고, 그날이 흰 눈 내려 쌓인 밤이거나, 벚꽃 요란히 핀 밤이면 더더욱 좋다.

 

한 잔의 술은 때때로 남편과 아내에게, 환각제 이상의 마력으로 둘을 가까이 묶어 놓을 때가 있다.

‘화 안 내는 날’을  ‘사랑의 날’로 바꾸는 데는 한 잔 술로 족하다.

마주 건너다보며 주고받는 뜨거운 시선들이 술 한 잔을 입술로 적실 때 아내여, 눈물을 흘려도 좋다.

 

그 신혼의 어느날, 실제로 그런 시선으로 얼마나 뜨겁게 서로를 탐닉했던가.

그 시선과 그 술잔과 그 뜨거움을 부활시키는 날짜를 정하자는 얘기다.

사랑도 날짜를 정해 놓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받는 아내는 아니다.

 

날짜를 정해 놓는 사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날짜가 아무리 흘러도 서로의 시선이 뜨거워지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토요일 같은 날을(아니면 서로가 기억하고 있고 기념하기 좋은 어느 요일을) ‘사랑의 날’로 정하고 서로의 호흡 속에 사랑을 교환하는 것이다.

아내여, 부끄러워 말라.

 

그냥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그런 부끄러움이 오히려 뜨거움을 식힐지 누가 알랴? 부끄러워 등 돌리는 대신에, 사랑의 날이 오거든 오랜만에, 그 신혼의 어느날처럼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는 신부처럼 남편 곁에 가만히 누워 볼 일이다.

아마도 그의 손이, 그의 몸이 움직이기 전에 계절의 향기는 어둠 속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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