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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스스로에게 엄격하라, 그래야 버틴다[DJ식 성공법 14]

현대판 변사도를이 정치판에 많다. DJ처럼 자신에게 엄격한 정치인이라면, 원칙을 지킬 줄 안다면...

김재원칼럼 [DJ식 성공법] | 기사입력 2020/08/2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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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제14법칙

스스로에게 엄격하라, 그래야 버틴다

어쩔 줄 모르게 힘든 때에도 추호도 흔들림 없는 마음 자세

 

 

우리가 DJ에게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견뎌왔느냐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면 열두 번은 더 쓰러지고도 남았을 세월 속에서,무엇이 DJ로 하여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도록 하였을까? 그것은 무서운 자기 질서, 스스로에게 혹독하리 만큼 엄격한 자기 질서였다. 흐트러지지 않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준비하고 정리하고 정비해 나가던 그의 자기 질서는 때로 종교의 계명 이상으로 엄격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확고한 자기 지탱법이 있어야 한다. 참선이나 단식 기도 등 흔들리지 않을 비법 하나를 우리도 몸에 익혀 두자.

 

▲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취임식장으로 향하는, 김대중대통령과 이희호여하  © 운영자

 

하늘이 무너져도

 

"피고 김대중, 사형.”

80년 9월 17일 오전 10시 2분.

남산 기슭의 육군 본부 대법정에서 실시된 김대중 내란 음모죄 선고 공판에서 DJ에겐 검찰에서의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된다.

판사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자신의 죽음을 선고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DJ는 흔들리지 않았다.

DJ는 자신의 죽음보다, 같이 형을 선고받고 있는 다른 피고인들, 자신의 동지들을 마음속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뒤쪽 방청석에서 한숨과 탄식, 그리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이라는 말이 한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셀 수도 없이 정리해 왔던 터였다.”

DJ는 사형 선고를 받던 그 순간을 훗날 이렇게 되돌아보고 있다.

그는 늘 죽음을 준비하며, 아니 준비는 아니더라도 각오하며 살아온 사람 같다.

그랬기에 그 순간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오히려 다른 피고들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얼굴에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으려면 평소에 모든 것을 각오하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DJ의 흐트러진 모습을 구경했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어떤 경우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사람답게 꼿꼿 했다.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죽임을 당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구나를 생각하면서 슬퍼하지도 않은 DJ였다.

 

 

혹독한 자기 관리

 

이미 각오를 하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어려운 시대에 흔들리는 마음을 보이면 안된다는 경계심이 몸에 배서 그런 것일까.

한 시대의 거목이기 위해선 필부(匹夫)다운 작은 마음가짐과 가벼운 몸가짐이어서는 안된다.

한 시대를 감당할 사람답게, 속이 껌껌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아무것도 겉으로 내보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

더구나 속을 털어 놓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만큼 살벌한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해선.

DJ 곁에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마음이 든든하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어쩔 줄 모르게 힘든 일이 생겨도 그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평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이 강한 리더는 매사에 측근들을 흔든다.

작은 일에도 소스라쳐 놀라는가 하면, 남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호들갑도 떤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무엇이 평정이고 무엇이 불안정인지 혼돈되어 평형 감각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환자들의 신뢰를 받는 의사 중에는 얼굴만 보아도 마음이 든든해져 아픈 데가 하나도 없는 듯이 느껴지는 의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있는 대로 겁을 주어서 만나러 갈 적마다 더 아프게 만드는 의사도 있다.

흐트러짐 없이 혹독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DJ는 교도소에서도 하루 10시간 정도는 책을 읽었다. 시계는 없었지만 때를 맞추어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확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그런 여건에서는 자기를 지탱하는 유일한 방법이게 마련이다.

 

▲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DJ는 의연했다.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원칙이 그에게는 오래ㅈ 전부터 가슴 속에 있었기 떼문이다.  © 운영자

 

서재로 출근하다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동안은 쓰러지지 않는다.

나무는 자라나는 동안에는 바위라도 뚫는다.

구르다가 멈추면 자전거는 쓰러지고, 성장을 주면 나무는 바위에 눌려 생명이 끝난다.

산사(山寺)에서 하루 네 차례씩 매일 정근하는 스님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갖는 동일한 종교 의식을 통해 '참 나'를 갖고 불심(佛心)을 꼿꼿이 세워 나간다.

DJ가 온갖 비탄과 절망에 익숙해져 있을 감금 상태에서나 연금 상태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과를 반복해 온 것도 자기를 유지하려는 수도승의 구도(求道)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도(道)는 유일한 인생의 지침일 수 있으니까.

마치 직장인이 출퇴근 시간과 근무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처럼, 교도소에서나 연금당하여 대문 밖도 못 나가는 집 안에서나 그는 자기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혹독한 자기 관리를 한다.

동교동 연금 시절 DJ는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는 외출하는 사람처럼, 아니 출근하는 차림 그대로 와이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한다. 그리고 출근한다.

안방에서 서재로 출근하는 것이다.

점심 시간에 식사하러 나왔다가 '일터' 인 서재로 다시 돌아간다.

서재에서의 일과는 정해져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매일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쓴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면 서재에서 퇴근한다.

퇴근하여 다시 안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서야 넥타이도 풀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DJ의 이런 의식적인 노력은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자기 관리이고,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 혹독한 출퇴근으로 DJ는 곁의 사람을 눈물겹게 했다.

 

"이석하지 말라”

 

목사나 신부가 기도로 자기를 지탱하듯, 불승(佛僧)이 참선으로 자기를 지탱하듯, DJ가 자기를 지탱하는 방법은 엄격한 시간 관리와 중심잡기 밖엔 없었다.

그의 이러한 자기 관리는 때로 종교의 계명보다도 더 엄격했다.

자신에게 엄격함은 강자의 논리요, 지도자의 논리다.

약자나 소인배나 똘마니는 자신에게 엄격함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소인배나 약자다.

편하게 살려면 우선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특히 자신이 하는 칭찬받지 못할 일에 관대해야 된다.

자신에게 엄격하게 되면 괴로움이 따른다.

다른 사람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여러 가지 조항으로 스스로를 묶어야 하는 괴로움이 따른다.

약자는 그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엄격함을 피해 간다.

강자는 그 괴로움을 능히 감당하기에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DJ의 엄격한 자기 관리는 유독 연금 상태에서만 행해진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엄격함이 DJ에게는 생활신조다.

국회의원 시절의 의정 활동도 누구보다 충실했다. 국회가 개원 중일 때는,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석을 하지 않은 DJ였다.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도 이석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이석은, 가끔 텅 빈 의석을 신문이나 방송이 카메라를 통해 공개해 준 덕분에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1문 1답으로 하자”

 

DJ는 국회의원으로서도 누구보다 성실했다. 의정 토론에서도 누구보다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대정부 질문을 할라치면 누구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언제나 정부 각료와 1문 1답의 질의를 요구했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1문 1답식이라야 여러 가지 질문을 다 듣고 나서 동문서답하거나, 두루뭉실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답변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DJ는 누구보다 다이내믹한 의정 활동을 했다. 63년 12월의 6대 국회 개원 후 6개월간 DJ는 본회의에서 13회라는 최다 발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들고 나와 정부 여당을 궁지에 몰아넣곤 했다.

DJ는 1문 1답식 대정부 질의를 비롯하여, 충실한 의정 토론 참여 등 국회의원의 자세에 대해 엄격한 주장을 펴 왔는데,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이 문제를 크게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식을 20여 일 앞둔 2월 7일, 국민회의와 자민련 합동으로 구성된 정치구조개혁위원회의 첫 회의에 참석하여 국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했지만, “국회의원은 없고 상임위원만 있다”는,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엄격히 해줄 것을 지적한 대목은 특히 눈에 뜨인다.

"공부 안하면 안된다. 현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1문 1답을 해야 심층적으로 문제를 따질 수 있다.”

그는 또 의원은 보좌관이 써 준 원고를 읽고 장관은 비서들이 써준 답변서나 읽는다면, 의원 보좌관과 공무원의 토론이지 국회의원과 장관의 국정 토론은 아니지 않느냐고 따끔하게 질책한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모두가 국정을 위해 공부하라는 당부였다.

어쨌든 박정희가 DJ를 크게 의식하기 시작한 것도 6대 국회 무렵부터이다.

61년에 5·16을 일으켜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으로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군사 통치를 하다가, 63년에 처음 생긴 국회라는 민주주의식 견제 조직을 처음으로 상대하다 보니 신경이 곤두섰다.

명령 한 마디면 통하던 내무반식 통치에 익숙해진 박정희로서는 국회가 마음에 걸렸고, 정보 장교 출신답게 국회가 움직이는 정보를 샅샅이 보고받고 있던 박정희에게는 유난히 눈에 띄었던 DJ의 의정 활동이 아무래도 범상치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박정희는 DJ를 정치적으로 의식하게 되고 견제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다.

 

▲    아마도 그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기' 였을지도....흔들릴 때마다 그는 겸허하게 하느님에게 매달려.....  © 운영자



"기본을 지켜라"

 

박정희가 국회의원 김대중의 이름을 안 것은 63년 정도라 치고, 반대로 김대중이 박정희라는 군인의 이름을 들은 것은 그보다 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8년 5월에 있었던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인제에서 출마하려던 DJ는 입후보 등록조차 못했다. 당시 '후보 등록 방해 사건' 으로 신문마다 크게 보도된 사건이었다.

이 후보 등록 방해 사건은 나중에 기회를 보아 쓰겠지만, 이러한 자유당의 선거 부정에 화가 난 DJ는 군대에 호소라도 한 번 해보자고, 그곳에 주둔해 있던 사단장의 관사를 찾아갔다.

사단장은 마침 부재중이었다. 다시 찾아와야 되겠다 싶어 사단장의 이름을 당번에게 물었다.

“박정희 장군님이십니다."

DJ는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그 후 다시 한 번 사단장 관사를 방문했으나 역시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3년 후 5·16을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박정희 장군이었다.

운명은 그렇게 묘하게 두 사람의 만남을 비켜 가게 했다. 그때 만났더라면 피차에 자유당 정권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이라 뜻 이 통했을 수도 있고,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관계도 그 양상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DJ가 없어지기를 바랐던 박정희가 먼저 세상에서 없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신과 주위에 엄격하기로 소문났던 DJ는 항상 기본을 지키라고 참모진들에게도 누누이 역설했다.

국회 개원중에 이석을 하지 않는다든가, 의정 토론을 활발히 하는 것이야말로 국회의원의 기본 자세라고 DJ는 후배 의원들에게 강조한다.

 

모든 것을 공개할 자신 있으면 귀신도 감히 어쩌지 못한다

 

국회뿐 아니라 DJ는 당직을 맡을 때도 모든 업무에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어떤 직책을 맡건 그가 관여하는 조직에는 항상 활기가 넘쳤다.

대충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참모진들이 어려워하는 것도 그런 면이다.

"야당도 프로다. 프로는 프로답게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일에 임해야 한다.”

그가 여태껏 해온 모든 일에 엄격한 프로페셔널리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주변 정리를 못하는 경우란 DJ에게 없다. 어떤 자리에 있는 그의 테이블은 항상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준비하고 정리하고 정비하면서 자기 자신을 엄격히 지켜 나갔던 것이다.

수첩도 항상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언더 라인을 그을 때는 자를 대고 정확하게 그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DJ의 이런 면은, 이번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서 그가 공개한, 깨알 같은 글씨로 스케줄이 적힌 수첩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케일이 큰 인간에게는 그것을 받쳐 줄 만한 받침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DJ를 지탱해 온 받침대는 자신에 대한 가혹할 정도의 '엄격함'이었다.

 

▲  결혼 이후 단란한 가정생활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도 굳건히 아내를 사랑하고, 그럼으로서 아내에게 존경받고 도움 받는 정치인으로서의 행운을.....(부인 이희호 여사와는평생 동지로서.....]   © 운영자

 

사생활은 없다

 

DJ나 우리들에게나 엄격함은 힘들 때 위기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

흐트러지지 말라.

사생활이란 이름으로, 어쭙잖게 사나이라는 이름으로 놀아나지 말라.

적어도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기업가든 정치가든 직장인든, 사생활이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저지를 수 있는 나약함이나 무질서나 부도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에게 엄격함을 DJ에게서 배워라. IMF의 한파가 영하 30도 이하보다 춥더라도, 엄격함은 훌륭한 자기 구제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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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활용팁

• 자기 지탱법을 한 가지씩 준비하라.

• 타인에게 관대해도 자신에게 엄격하라.

•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한 생활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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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20/08/26 [18:02] 수정 삭제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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