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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대처럼 꺾이지 않고 구리처럼 휘어진 노천명

"목아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이여...."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읊어봤을 노천명의 詩 한구절..시인은 가고...

홍찬선 | 기사입력 2020/08/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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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5. 사슴 詩人 노천명

대처럼 꺾이지 않고 구리처럼 휘어진 노천명

사슴도 목 길게 늘이며 슬퍼했을 것이다

 

▲     © 운영자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고

관이 향기로워 무척 높은 족속이라고  

잃었던 전설을 담은 향수를 어찌할 수 없다고*

자신을 알아주었던 사슴시인이 

조국의 젊은이를 

일제(日帝) 위한 전쟁터로 몰아넣는 

반민족 친일에 시와 혼을 팔고

서울이 공산치하에 떨어졌을 땐

공산당을 위해 붓을 놀렸다

 

하늘도 천명(天命)을 아파했을 것이다

 

어린 기선(基善)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삶으로 되돌아 온 뒤 천명이 되었다

이름을 바꿔 몸의 숨은 늘렸으되

몸의 주인인 정신과 얼의 숨은 

도리어 짧아지고 있었다

 

천명도 천명을 원망했을 것이다

 

오 척 일 촌 오 푼에 이 촌이 부족해 불만이고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가며

대처럼 꺾일지언정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 어려운

성격에 가끔 자신을 괴롭히던**  

천명은 일제를 거부하며 대처럼 죽지 못하고

일제를 위해 구리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진 

천명은 공산당 문우(文友)를 대처럼 자르지 못하고

공산당을 위해 구리처럼 구부러지고 휘어진

천명은 심술쟁이처럼 다가오는 천명을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명은 외로웠을 것이다

 

일제에 버림받고 사랑에 버림받고 공산당을 버리고

평생 독신으로 마흔여섯 짧은 삶을 쓸쓸하게 마감하며

대처럼 꺾이지 못하고 구리처럼 구부러진 삶을 돌아보고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마당엔 하늘을 들여 놓고 밤이면 별을 안아 외롭지 않게

놋양푼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여왕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던***

천명은 구리처럼 휘어져 외로웠던 삶을 

뒤에 오는 사람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     © 운영자

 

* 노천명의 대표 시 <사슴>에서 인용.

** 노천명의 시 <자화상>에서 인용.

*** 노천명의 시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에서 인용. 

**** 노천명의 시 <고별>에서 인용. 이 시의 뒷부분은 그의 묘비명에 새겨져 있다.

 

▲     © 운영자


대처럼 꺾이지 않고 구리처럼 휘어진 노천명의 생애

 

***** 노천명(盧天命, 1912. 9. 2~ 1957. 6. 16): 황해도 장연(長淵) 출생. 부친 사망 후인 1919년 경성(京城)으로 이사해 이모 집에서 진명여학교를 다니며 졸업했다(1930). 그해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재학 중에 <밤의찬미>를 『신동아』(1932. 6월호)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졸업한 뒤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했고, 이때 대표작인 <사슴>을 발표했다. <사슴>과 <자화상>이 실린 첫 시집 『산호림(珊瑚林)』을 1938년에 출판했다.

 

1941년 8월 조선문인협회 간사가 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행위가 시작됐다. 조선 청년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1943. 8), 가미가제 특공대로 나가 사망한 조선인들을 추모, 미화하는 <신익(神翼)-마쓰이오장 영전에>(1944. 12) 등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1944년 10월 이전에 발표한 시들을 모은 두 번째 시집 『창변(窓邊)』을 1945년 2월에 출판했는데, 해방 후에 친일시 9편을 삭제하고 계속 출판했다. 

 

1950년 김일성의 남침 때 서울이 공산당에게 점령되자 피난가지 못한 노천명은 임화 김사량 등이 주도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했다. 9.28 서울수복 후 좌익분자 혐의로 체포돼 20년의 실형을 받았으나, 문인들의 구명운동으로 6개월 만에 석방됐다. 석방 뒤 부역혐의를 해명한 <오산이었다>와 옥중경험을 다룬 <영어(囹圄)에서> 등을 담은 세 번째 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1953년에 출판했다.  

 

1957년 6월16일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쓰러져, 몇 권의 책과 앉은뱅이책상 외에 변변한 가재도구도 없는 손바닥 크기의 낡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는 천주교묘지에 언니 노기용씨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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