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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외로움과 시대의 벽과 한평생 싸운 승려 김일엽<한국여성詩史>

청춘을, 인생을 불살라 봤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스님이 돼서 찾은 것은또 무엇인가, 묻고 싶다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1/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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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25>

외로움과 시대의 벽과 한평생 싸운 승려 김일엽

 신여성운동가이자 시인 소설가였지만...

 

▲   그 시대의 신여성이던 김일엽... 스님이 되어 수덕사에서 여생을 보낸 김일엽 © 운영자

 

돌계단은 삶의 멍에였다

디디고 디뎌 이겨내야 할 멍에 

밟고 밟아 벗어던져야 할 멍에

외로움과 편견이란 시대의 벽에

둘러싸여 끝없이 신음했던 멍에

 

덕숭산 꼭대기까지 디딜 발 생각해 

정성스럽게 돌 한 개 한 개 다듬어 

놓은 마음까지 떨쳐버려야 할 멍에

하루 이틀에 자유로워질 수 없는 멍에

뼈를 묻어도 벗을 수 있을지 모를 멍에

 

어렸을 때 고아가 된 것이 병이었고

어린 마음에 생긴 외로움이 키운 멍에였다

죽음이 뭔지 사는 게 뭔지도 모를 다섯 살 때

엄마가 동생을 낳다 저 세상으로 떠났고

아래로 태어난 동생들이 차례차례 죽었다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마저 열일곱 살 때

감기지 않을 두 눈을 기어이 감았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학교에서 

외할머니 덕분으로 학교에서 달랬고

외로움을 이기려 이화학당을 졸업하자마자

화촉을 밝힌 40대 독신 화학교수의 지원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문을 배웠다

 

▲ 일엽스님(왼족)과,   친구로 지냈던 화가 나혜석  © 운영자

 

시절 인연은 나혜석 김명순 등으로 이어져

3.1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이듬해 귀국해 잡지 <신여자>를 창간했다

개조는 포탄에 신음하던 인류의 부르짖음이요

해방은 방안에 갇혀 있던 여자들의 부르짖음이다

사회를 개조하려면 가정을 개조해야 하고

가정을 개조하려면 여자를 해방해야 한다*

 

조혼과 축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애하는 것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은

수많은 반대에 부딪치는 것

새로운 사상을 정착시키는 일은   

더 많은 손가락질을 받는 것

 

신여자의 길은 쉽지 않았고

네 번으로 거친 삶을 접어야 했다

하나의 끝남은 다른 하나의 시작이요

시작은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운명과의 한판 승부였다

 

남편과 헤어져 일본에서

새로운 것을 모색하다 만난 것은 

삶을 더욱 옥죄게 만드는 모순이었다

일본인 오다와의 임신은 

결혼에 이르지 못한 채

아들을 낳고 방황으로 이어졌다

 

▲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일엽스님은 말년을 수덕사에서 보냈는데.... © 운영자

 

구원자처럼 다가온 유학생 시인도 

머물 곳은 아니었다

남이 먹던 음식이나 입던 옷은 싫어하면서

남의 남자는 싫어하지 않는 심리는 무엇인가**

자신을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도 

보석으로 만든 그릇이 깨져 못쓰는 것과 달리

정조는 물질 같은 고정체가 아니라 

사랑이 있는 동안에만 있는 것이라며***   

그 시인을 믿었지만 발등을 세게 찍혔다

 

시련은 고통으로 고통은 출가로 이어졌다

불교신문 사장과 칠팔 개월 사귀다 헤어지고

재가승과 재혼했지만 곧 이혼하고 나니

몸과 마음은 더 이상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의지할 지팡이가 필요했다

따듯하게 보듬어줄 둥지가 절실했다

 

서른일곱 살 때 수덕사 문을 두드렸다

기댈 언덕이 돼 준 만공(滿空)은 

붓을 꺾으라 했다 

오직 하나 기댔던 붓을

잃은 마음은 갈피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덕숭산 돌계단을 오르내렸다

살려고 오른 산길도 당장은 

살길이 아닌 듯 했다

멍에에 멍에가 쌓이고 쌓여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멍에에 채였다

수덕여관의 초롱불이 흔들릴 때

애써 찾아온 벗 애써 돌려보내고

애써 덕숭산 꼭대기를 찾았다

 

 

▲  수덕사로 일엽스님을 찾아온 방문객들과 함깨...   © 운영자

 

시간만이 약이었다

한 해 두 해 세 해…

물처럼 시간이 흐르고

바람처럼 멍에도 흐르고 

꿈결처럼 사람이 떠나고

 

서른여덟 해가 흐른 뒤에

한 잎은 연잎이 되고

멍에는 바람이 되었다

돌계단은 다리가 되어

삶에서 떼 낸 멍에를 

죽음에서도 말끔히 떼어주었다

 

 

* <신여자> 창간사에서. 

** <신여성> 1926년 3월호에서. 

*** 김일엽, <나의 정조관>, 『조선일보』(1927. 1.8일자)에서. 

 

▲    김일엽 이 남긴 저서 '청춘을 불사르고'의 표지© 운영자

 

**** 김일엽(金一葉, 1896. 4. 28~1971. 2.1): 평북 용강군 덕동리에서 목사인 김용겸과 어머니 이말대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불명은 하엽(荷葉). 일엽이란 호는 일본 유학 때 만난 춘원 이광수가 일본 여성작가 히구치 이치요(桶口一葉)의 이름을 따와 지어준 필명이다. 

일제강점기 때 여성운동을 한 언론인 시인 수필가이며 승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그리고 동생들도 모두 죽어 고아가 되었다. 외할머니의 배려로 삼숭보통고등하교와 이화학당을 다녔다. 1918년 3월,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이노익과 결혼했다. 

남편의 지원으로 일본 닛신여학교에 유학했다. 화가 나혜석, 소설가 김명순 등과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 1년만에 귀국해 1920년2월, <신여자>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이후 시인과 소설가 및 언론인으로 신여성운동과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 여러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1933년 수덕사의 만공(滿空)선사 아래에서 출가했다. 38년 동안 비구니 학당인 견성암(見性庵)에서 참선수행하다 1971년 수덕사 환희대(歡喜臺)에서 입적했다.

 

▲    일엽스님의 자취...수덕사를 찾아온 필자 홍찬선..수덕사 환희대 마당에서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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