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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캄캄한 조국의 등불이 된 첫 여학사 김(하)란사 <한국여성詩史>

앞 선 여성의 길은 평탄치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사인 김하란사. 독립운동에도 가담했던 선구자로서...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2/1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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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35> 

캄캄한 조국의 등불이 된 첫 여학사 김(하)란사 

 선각자를 알아주는 남편의 염화시중...

 

▲  나이 많은  기혼녀의 입장, 아이까지 둔 몸이지만.... 배워야 나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만학도 몸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김하란사  © 운영자

 

캄캄한 시대 깜깜한 나라에 

나부터 등불을 밝히도록 도와주세요

이미 결혼을 했고 나이도 스물넷이나 된

김란사는 프라이 이화학당 당장을 밤에 만나

들고 간 등불을 모두 끄면서 이렇게 설득했다

 

두드리면 열리고 구하면 얻게 마련이었다

미혼 학생만 받는다는 학칙은 

한 번 두 번 거절의 벽이 되었으나

지극한 정성을 담은 삼세판으로 

예외를 인정받아 만학도가 되었다

 

세계로 향하는 창과 문이었던

인천에 살았던 것이 시대의 눈을 뜨고

역사를 똑바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자극이었고 채찍이었다

자상한 남편은 동남풍이 돼 주었고, 

 

▲  아이까지 있는 아내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데, 웃으며 허락했던 남편 하상기.  참으로 그 시대의 드문 남편이었고, 김하란사의 전설을 완성한 ....   © 운영자


공부는 이화학당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위 공직자 부인으로 편하게 사는 것은 

그의 양심에 맞지 않았다

스물넷이란 나이도 

결혼해 어린 딸이 있다는 현실도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더 많이 배워 조국의 미래를 밝히는

선구자가 되려고 가정의 울타리를 넘었다

인천항을 다스리는 감리서 최고책임자였던 

하상기는 미국으로 유학 가겠다는 

당찬 부인을 만류하지 않았다

 

젖먹이 딸 자옥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유학비용도 기꺼이 모두 다 대 주었다

몽매에서 벗어나려면 앞선 서양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집념과 의욕과 과단성에

남편은 빙그레 웃어 주었다

선각자는 선각자가 알아주는 염화미소였다

 

 

▲  하란사의 출중한 인간역정을 기록한 자료의 일부....    © 운영자

 

쉽지 않은 길이었다

말도 물도 땅도 음식과 사람도 모두

낯선 곳에서 짧게 배운 지식으로 

따라가려니 밤을 낮 삼아야 했다

외로움에 눈물이 말랐고 

그리움에 가슴이 까매졌다

 

웃으며 보내 준 이 길을 

중간에 그만 걸을 수는 없었다

입술에 피가 맺혔고

허벅지에도 핏물이 솟았다

눈물과 핏물 속에 시작은 끝을 맺었다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대한제국 최초의 여학사라는 영예를 안고

모교로 돌아와 사랑스런 아이들을 가르쳤다

심한 욕을 달고 살았다 

배웠다고 거들먹거린 것은 아니었다

 

멋쟁이면서 엄격한 범 선생님,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강제로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배운 것을 오롯이 조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쏟아 부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꺼진 등에 불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어린 학생들도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욕먹은 가슴과 가슴은 유관순이 되어

기미년 3월1일 대한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쳤다

 

▲    훗날의 역사가 김하란사를 다시 발견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이름조차 잊힐뻔 했던 김하란사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다.  © 운영자

 

인간도 아닌 일제가 휘두르는 총칼에

대한독립을 이루지 못하였어도 

만세의 뜻은 오롯이 잇고 이었다 

웨슬리언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의친왕과 함께 고종의 북경 망명을 추진했고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시(毒弑)된 뒤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단으로 참석하기 위해

북경에 가 환영만찬회에 참석한 뒤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일제가 보낸 스파이의 독살이었을까

 

마흔여덟의 짧은 인생은 

뜻하지 않은 때에 

예정하지 않은 곳에서 

굵고 길게 역사에 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별이 되었다

 

 

▲ 필생의 역작이 될   <한국여성詩史> 를 집필하고 있는 필자 홍찬선. 그는 현재 가장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극작가이여, 또한 <한국여성詩史> 를 통하여 여성문제 연구에 깊이....   © 운영자

 

* 김란사(金蘭史, 1872~1919); 1872년 평양에서 부친 김병훈과 모친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역업을 하던 부친을 돕기 위해 1911년 인천으로 이사했고, 부인 조씨와 사별한 하상기(河相驥)와 결혼했다. 남편 성과 세례명인 낸시(Nancy)의 한자표기를 따라 하란사(河蘭史)로 불렸다. 

1896년에 스물넷의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졸업한 뒤 일본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리언 대학에서 문학사를 취득했다(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사였다. 1907년 귀국 후에 교회와 이화학당에서 교육자로서 활동했다. 

1910년 국권을 일제에게 강탈당한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난 뒤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이화학당에서 교수 겸 기숙사 사감으로 활동했다. 이 때 이화학당에 다닌 학생 가운데 유관순이 있었다. 

웨슬리언대학에 함께 다녔던 의친왕과 친해 고종의 통역을 맡고 엄비의 자문 역할도 맡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고종의 친서를 갖고 의친왕과 파리를 방문하려고 북경에 갔다가 급서(急逝)했다. 일제의 간첩이었던 배정자에 의해 독살됐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독감에 걸려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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