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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500년 전에 부부평등 실현한 문학천재 송종개 <한국여성詩史>

역사의 그늘에 묻혀버린, 존경받아 마땅한 여성들이 수없이 많다. 고래로 남여불평등국가인 이 나라에서...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2/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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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37>

500년 전에 부부평등 실현한 문학천재 송종개

 남성위주 사회..창고에 묻혀 버린 부부평등 선구자

 

▲   천재적인 여류작가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던....그러나 초상화 하나 없이 문집으로 정리되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선구자 송종개....  © 운영자

 

내가 해야 할 일을 정성껏 다하고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떳떳하게 요구하니

남편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알아주는 지음(知音)으로 

부부평등을 500년 전에 실현했다

 

종성으로 귀양 가 있는 동안

시중들라고 보낸 여종을 첩으로 맞아

딸을 다섯이나 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소실과 딸들을 자신의 친자식처럼 키웠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 시어머니 3년 상을 

혼자 정성껏 치른 뒤 삼천리 먼 길을 나섰다

나 혼자 편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가정을 지키고 나를 찾기 위한

어렵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권리는 스스로 요구해야 얻을 수 있고

권리는 착실히 관리해야 지킬 수 있으며

남들이 밖에서 주는 권리는 사상누각이고

남들에게 구걸하는 권리는 바람처럼 빠지는

섭리를 깨달아 내린 처방이었다

 

▲  송종개 모현관   © 운영자

 

홍주 송씨 가문의 대쪽 같은 성격으로

덕봉은 남편 미암을 따끔하게 가르쳤다

술과 색을 멀리하며 살았다고 자랑하자

그깟 금욕적 삶을 어린아이처럼 

자랑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겉으로 어짊과 옳음을 베푸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다

나 홀로 시어머니 3년 상 치르고 

삼천리 길 찾아간 것 어느 것이 낫냐며

이순(耳順) 남편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친정아버지 비석 세우는데 도와달라고 했으나

전라감사 남편이 친정에서 알아 하라고 하자

가짜 화목함을 자랑하지 말고 내 편지 읽고

군자라면 똥고집보다 융통성이 있어야한다고 

또박또박 똑바로 하라고 다그쳤다

 

덕봉이 보낸 착석문(斲石文)에는 

결혼 첫날 장인이 사위를 좋아하던 일과

미암이 장인 상 때 소식(素食)했을 뿐 

삼년 동안 한 번도 제사지내지 않았음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   미암과 덕봉의 시비  © 운영자


덕봉을 사랑하고 양심적이었던 미암은 

계면쩍은 헛기침을 하고 청을 들어주었다

미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내가 지은 한시 서른여덟 수를 모아

덕봉집으로 만들어 주었다

 

눈 내리고 바람이 더욱 차니

냉방에 앉아 있는 당신 생각에 

술 한 잔 보내니 찬 속을 덥히라고*

미암이 엿새나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겨울 밤

시 한수와 모주 한 동이를 보내자

 

국화잎에 눈발이 날리어도

촛대 밝힌 따듯한 방이 있고

추운 집에서 따듯한 술 받아

뱃속을 채워 매우 감사하다고**

덕봉은 정다운 시로 답장했다

 

신사임당보다는 어리고

허난설헌보다는 손위면서 

동시대 여성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명성이 사임당 난설헌보다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 어느 누구의 탓이었을까

 

아들이 대학자가 아닌 게 원인이었을까

동생이 시집 만들어 북경에 가지 않아서였을까

남편은 훨씬 나았는데도

역사 창고에 깊숙이 숨어 있던 것은

역시 남성위주 지배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    송종개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는 남편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보물 260호 © 운영자



 

 

* 미암이 1569년 겨울, 승지 때 엿새 동안 집에 못 갔을 때 덕봉에게 보낸 한시; 雪下風增冷 思君坐冷房 此醪雖品下 亦足煖寒腸(설하풍증냉 사군좌냉방 차료수품하 역족난한장)

** 덕봉은 미암에게 이 시를 받은 즉시 다음과 같은 답시를 보냈다. 菊葉雖飛雪 銀臺有煖房 寒堂溫酒受 多謝感充腸(국엽수비설 은대유난방 한당온주수 다사감충장). 참으로 벗처럼 동등한 부부였다.

*** 신사임당(1504~1551) 송덕봉(1521~1578) 허난설헌(1563~1589)은 나이는 달랐지만 살던 시기가 겹치는 동시대 사람이었다.

**** 덕봉 송종개(德峰 宋種介, 1521~1578): 사헌부 감찰을 지낸 송준(宋駿)의 딸이며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부인이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덕봉(담양군 장신리에 있는 봉우리)이라는 호를 썼다. 

덕봉은 16세에 8살 위인 미암과 결혼했다. 미암은 결혼 뒤인 26세 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원 정언이 됐다. 1546년 을사사화와 이듬해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돼 제주도와 종성 등에서 19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덕봉은 미암이 종성에서 귀양살이 할 때 해남 시댁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돌아가자 3년 상을 치렀다. 1560년 40세 때 남편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종성으로 찾아갔다. 이 때 지은 한시 <磨天嶺上吟(마천령상음)>이 전한다.  

 

行行遂至摩天嶺(행행수지마천령) 

東海無涯鏡中平(동해무애경중평) 

萬里婦人何事到(만리부인하사도) 

三從義重一身輕(삼종의중일신경)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가 끝없이 거울처럼 펼쳐졌네 

부인이 어째서 만 리 길을 왔는가

삼종의 도 무겁고 이 한 몸 가볍기 때문

 

미암은 선조가 즉위한 1567년에 해배돼 대사성 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낸 뒤 이조참판을 지내다 사직하고 낙향했다.  

덕봉과 금슬이 좋았던 미암은 덕봉이 51세였던 1571년에 처조카 송진(宋震)을 시켜 덕봉이 지은 시 38수를 모은 『덕봉집(德峰集)』을 내주었다. 안타깝게도 『덕봉집』은 전해지지 않고, 작품 25수가 『미암일기』(보물 260호)에 전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에서 2012년에 『미암일기』에 실려 있는 25수를 번역해 『국역 덕봉집』을 출판했다.  

 

▲ 회가 거듭될 수록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듣고 있는   한국여성詩史의 작가 홍찬선...스스로 제작한 도자기를 들고...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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