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1>
美 예일대 ‘312년 금녀의 벽’ 깬 첫 여성 종신교수
오 희 미국수학학회 부회장
서둘러 빨리 간다고
일찍 도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나이에 해야만 하는 옳은 일을 하면서
그 나이에 주어진 사명을 오롯이 받아들여
비록 한 해 늦더라도 떳떳하게 가슴 펴고
가야 하는 이유 명확하게 밝히고 가는 게
훨씬 빠르게 다다르는 올바른 길이었다
|
민중을 위해 옳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저를 자랑스러운 제자로 여겨 주세요*
그의 애틋한 하소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수학 지진아란 수모를 참으며 일 년 더
한 숨 죽이며 한 담금질이 큰 힘 되었다
총학생회에서 노동분과장으로 활동하다
정답 없는 사회과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언제나 답이 있는 수학으로 다시 돌아왔다
열심히가 재능보다 낫다고 굳게 믿었고
아픈 만큼 더 크고 고통만큼 더 성숙해졌다
여자는 수학에 약하다는 편견과
한국인은 수학이 뒤진다는 선입견,
못된 두 마리 견을 깨워 쫓아내려고
예일대학교에서 수학박사가 되었고
혼자 외로운 도장(道場) 깨기에 나섰다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벽은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프린스턴 MIT 브라운 대학교 교수를 거쳐
열일곱 해가 흐른 뒤 예일대로 돌아왔다
312년 역사에서 첫 여성 종신교수였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캄캄한 어둠 속을 더듬더듬 헤매다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켜면 그 공간이 매우
질서정연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
깨달아 다다른 첫 번째 정상이었다
수학이란 큰 산엔 봉우리가 많았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관문 하나하나가
스위치를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처음엔 아무런 질서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수학문제는 위대한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실마리 삼아 더욱 채찍질 했다
|
예일대 종신교수 되고 두 해 뒤 새터 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 처음이었고 5000 달러는 보너스였고
사이먼스펠로십 구겐하임펠로십 호암과학상이 뒤따랐다
2021년 2월에는 미국수학학회 부회장으로 취임하니
코로나로 우울하던 배달겨레에 준 큰 선물이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이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스스로를 낮게 여겨
야망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주는 신뢰,
닮고 싶은 여자 수학자가 되어
자신감을 갖도록 도움 되겠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세종대왕 이후 쪼그라들기만 했던
수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커다란 한 걸음이었다
권투 탁구 골프 야구 축구 스케이팅 같은 스포츠에서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영화 소설 K팝 등의 문화를 거쳐
수학을 주춧돌로 의학 자연 인문 사회과학으로 이어지는
문화강국으로 부상하는 용트림이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학의 답을 찾는 구도의 길을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빨리 가는
불속이달(不速而達)이었다
|
<필자 메모>
* 오희 예일대 석좌교수가 1991년 서울대 수학과 재학시절 전공과목 중간고사 답안지에 쓴 문장.
** https://news.yale.edu/2013/12/12/conversation-hee-oh-professor-mathematics(YaleNews, 오희 교수 인터뷰, 2013년 12월12일자).
*** 오희(吳熙, 1969~); 수학자. 예일대학교 아브라함 로빈슨 수학과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1992년)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1997년). 프린스턴대학교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MIT) 브라운대학교 등의 교수를 거쳐 2013년에 예일대 종신교수가 됐다. 312년 예일대 역사상 첫 여성 종신교수이었다.
2015년에 최근 6년 동안 가장 훌륭한 연구실적을 낸 수학자에게 2년 마다 주는 새터상을 받았다. 2017년에 사이먼스펠로십과 구겐하임펠로십을 수상했으며 2018년에 호암과학상을 받았다. 2020년 12월9일에 한국인 처음으로, 3년 임기의 미국수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돼 2021년 2월1일부터 임기가 시작됐다.
|
|||
|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