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5>
연세대 자퇴하고 ‘새 정치’ 보여주는 장혜영 의원
'타임 넥스트 100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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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만 보려고 했다
항상 바깥에서 주어지는 잣대가 아니라
내 스스로 양심에 따라 세운 기준에 따라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고자 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눈빛과 볼멘소리와 손가락질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질 때마다
연세대를 떠날 때 마음을 생각했다
그 때 했던 다짐을 다시 새겼다
여러분 학교를 사랑하십니까?
아니라면 왜 굳이 여기에 있습니까?
명문대 타이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게 우스웠으며
살아가는 데 대학졸업장이 꼭 필요한 것 같지 않았고
대학은 상아탑도 지식의 전당도 정의로운 공간도 아니기에*
4년 성적장학금을 받던 신문방송학과를 미련 없이 그만뒀다
대학의 멍에를 벗고 동생을 되찾았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던 곳이라 믿고 보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깨진 것을 깨닫고
인권침해에 대한 재활교사의 양심선언에도
학부모들이 오히려 공론화를 반대하는 것을 보며
17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동생과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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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할 수 없는 장애인은 없다
생각을 시설에서 하면 시설로밖에 돌아갈 수 없지만
생각의 시작을 동생의 삶에서 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크게 반성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
동생과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일들을
영화 『어른이 되면』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라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고심 끝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치가 쉽지는 않았다
희망한대로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치돼
경제관료 경제학박사 출신 의원들 틈바구니에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낫게 하는 일에 정성을 쏟아
첫 국감에서 가장 잘한 의원으로 평가받았으나
개인소신으로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때 조문 가지 않았다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이 아무리 크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해도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며**,
상중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냐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 하나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는 비판이 거셌고
항의성 탈당선언이 잇따랐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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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대표를 던지려 했으나 찬성 당론을 존중했다
다행히 민주당이 금태섭 의원을 징계했던 것과 달리
정의당 안에서 비난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포용과 배척이란 그릇의 차이는 컸다
2021년 1월18일엔 김종철 정의당 대표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함께 젠더 폭력 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마음 깊이 신뢰하던 당 대표로부터 평등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는 충격과 고통이 실로 커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에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며 정의당과 우리를 위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올곧게 행동으로 옮긴 그를
제대로 알아본 건 나라 안보다 바깥이었다
미국의 『타임』은 2021년 2월, ‘타임 넥스트 100인’에
장혜영을 포함시켰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했다
‘당론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정치 현실’에서
당의 배려로 국회의원이 된 초선의원으로서
당의 지지층으로부터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헌법가치를 지키려는 ‘행동하는 양심’이***
옳고 그름보다는 내편 네 편이 더 중요한
한국의 불모정치에 참신한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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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혜영 의원이 연세대 그만 둘 때 교정에 붙인 대자보 내용에서.
** 장의원이 박원순 전 시장 장례식 때 조문가지 않기로 하면서 낸 의견문.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울 때 강조한 정치철학.
**** 장혜영(1987~):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영상연출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영화감독 작가 크리에이터 싱어송라이터 학생운동가 장애인운동가 여성운동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장혜정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다. 2019년에 YWCA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지도자상과 한국장애인인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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