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8>
月光之功으로 독일 무형문화재 된 강수진
생각을 몸짓으로 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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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은 고통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스스로 버리고
편안한 것을 굳이 허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으나
아픔 없이 큰 행복은 없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었던 한국무용을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로 바꾼 것은 행운이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발레에 적합한 체형이고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선생님 격려로 이겨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이루고자 할 때
그것에 집중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나온다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밀어 올렸다
굳센 의지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냈다
고등학교 때 하늘의 명이 찾아왔다
베소브라소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을 만나
영어와 불어를 한 마디 못한 채 모나코 유학을 떠났다
머릿속을 꽉 채운 발레 생각이 두려움을 저만치 밀어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어린 나이에
혼자 지내는 것은 큰 시련이었다
나 혼자만 모자란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향수병에 빠져 발레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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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믿을 건 사람이었다
베소브라소바 스승이 엄마가 되어
포근히 안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로지 실력만이 살 길이었다
모두 잠든 밤
캄캄한 연습실 한쪽에서
은은한 달빛만을 벗 삼아
하루 두세 시간만 잤다
월광지공(月光之功),
피눈물 나는 연습으로
높게만 여겨지던 벽을 하나 넘었다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오디션 합격,
열아홉 살 때였다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뛴다 난다 하는 발레리나 사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연습, 연습뿐이었다
하루에 토슈즈를 서너 켤레씩 사면서
오로지 땀과 몸만을 믿었다
이천팔백여 해가 떴다가 지고
팔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솔리스트로 선발될 수 있었다
수석발레리나가 되어 줄리엣이 되고
타니아나 지젤 에스메릴다 마르그리트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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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끝까지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종아리뼈에 금이 가서 1년 동안 발레를 쉬었다
삶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대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려고
서른 셋,
남들이 그만 둘 나이에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슬럼프가 올 때 눈물은 약이 되었다
청량고추를 넣은 아주 매운 음식은
눈물을 감추기 위한 약이었다
실패한 어제는 어제고
좌절하지 않고 행복한 오늘을 맞았다
고통과 무모가 빛을 발했다
껍질 벗고 새 옷 갈아입을 때
천적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가장 크지만
헌 옷으로는 새 삶을 살 수 없다는 것
한국무용에서 발레로 바꾸면서 역사로 증명했다
발레로 사랑과 열정을 전달하는 것
인공지능이 대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발레리나는 자기 몸을 조각하는 조각가라는 것
발레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알려주는 발레리나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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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리나 김주원과 박세은, 발레리노 김기민 등이 그 뒤 이 상을 받았다.
* 강수진(姜秀珍, 1967. 4. 24~): 서울 출생. 리틀엔젤스예술단 출신으로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선화예고 재학 때인 1981년12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의 눈에 띄어 모나코로 유학을 떠나 3년간 배웠다. 1985년 아시아인 두 번 째로 로잔국제발레콩쿠르에서 그랑프리(1위), 1986년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입단. 1999년에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의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그 10월엔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에 독일정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캄머 탠처린(궁중무용가)상’(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에 해당)을 받았다. 2016년 7월22일 독일에서 슈트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입단 30년 만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발레단 동료였던 터키인, 툰치 소크만과 2002년 결혼한 뒤, 남편도 국립발레단에서 객원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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