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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來

라인강의 하늘을 난 새가 된 파독 간호사 민병재 <한국여성詩來>

쉽게 이루어지는 역사는 없다. 적어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에는 많은 아픔과 눈물이 따른다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6/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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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19>

라인강의 하늘을 난 새가 된 파독 간호사 민병재

시인 소프라노 의사되다

 

▲     © 운영자

 

청춘을 투자해 미래를 열었다

가난과 남아선호에 희생당했던 삶,

눈물을 빗물 삼고

울음을 거름 삼아

고통을 벗으로 현실을 이겨내고

자신과 조국의 어두웠던 과거와

우울했던 현실을 밝은 앞날로 바꿔놓았다

 

탓하지 않았다

조국의 잘못으로 꽃다운 청춘에

이억만 리 낯선 땅으로 떠나야 하는 운명을

 

원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난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고통을

 

가지 말라는 말은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것은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임을 알았기에

지혜로운 딸들은 웃으며

용감하게 독일 행 비행기에 올랐다

 

▲    1966년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한국 간호사들은... © 운영자

 

눈물이 저절로 주르륵 쏟아졌다

좌석에 앉자마자,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과

말도 통하지 않는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라인강과 로렐라이언덕에 대한

설렘을 가로막고 짠물부터 선사했다

 

엄마, 제가 돈 벌어서 반드시 빚 갚아드릴게요

누나가 너희들만은 꼭 대학에 보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

돈을 벌어 가난에 찌든 가족을 돕고

뼛속까지 남성위주였던 한국을 벗어나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펼쳐보겠다는

당찬 의욕도 막상 떠나야 하는

진실의 순간에는 먹먹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 대신 번호표를 받고

번호표대로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에 갇힌 닭처럼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석 달이면 충분했다

  

▲ 남해에 자리잡은,   독일에서 돌아온  광부와 간호사 가족이 모여 사는 독일마을  © 운영자

 

 

입에 안 맞는 음식은 고추장으로 달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언어는 눈치로 이기고

처음 만난 이국인에 대한 편견과 냉대는

미소와 정성스런 마음으로 누그러뜨리자

어려움은 즐거움으로 바뀌고 그들은

연꽃으로 피어나 꿈을 주는 천사가 되었다**

 

좋은 일이 그냥 이뤄지지는 않았다

한국에 없던 공짜 점심이 서독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움, 엄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불쑥 찾아올 때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한 달에 받는 월급 700마르크에서

생활비로 50마르크만 남기고 모두

엄마 아부지에게 보냈다

 

무심한 게 세월이었다

내 다시 돌아오리라며 손가락 걸고

태평양을 건너 날아온 철없던 작은 새는***

3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40년 넘게 독일을 고향으로 살았다

 

▲     파독 간호사들의 애환을 그린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표지 © 운영자

 

김금선은 춤으로 한국 문화를 알렸고

박모아 덕순은 소프라노로 한국 가곡을 불렀고

이민자는 파독 간호사 중 최초의 의사가 되었고

윤승희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환갑에 마라톤을 완주했고

정광수는 우간다에 에이즈와 말라리아 퇴치의 희망을 심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기를 좋아했던

민병재는 43년 동안의 간호사 근무를 마치고

몸은 라인강가에 있지만 영혼은 대한민국과

고향 땅, 경기도 이천의 노성(老星)산 하늘을 날며

시를 쓴다,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행복한 딸로서*****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

지친 날갯짓으로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가여운 새야

무엇을 찾아 수만 리 허공을 날아왔느냐

길 잃고 고향 찾아 둥지 찾아 헤매는 새야

너의 둥지는 무너지고

정든 강산도 변했는데

흔적 없는 옛 고향 찾아서 무엇하리

지친 날개 접고서 이곳에 살려무나******

 

 

▲   세상을 떠난 서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 운영자

 

 

*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17627~93일에 열린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독일로 간 한국 간호여성들의 이야기> 기획전에 전시된 내용.

** 서독에 간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인들에게 연꽃블루 엔젤(Blue angel)’로 불렸다. 박경란,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서울: 정한책방, 2016, 2018), 6.

*** 민병재의 시 <고향 새야>의 첫 연, 민병재,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서울: 필리리스토리, 2018), 66.

**** 박경란 작각가 파독간호사 21명과 인터뷰를 해서 쓴 책,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에서 인용.

***** 민병재 <시인의 말>,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서울: 필리리스토리, 2018).

****** 민병재의 시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 153.

 

******* 파독 간호사; 박정희 정권 때 서독에서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한독근로자채용협정에 따라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서독에 파견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371. 1963년부터 1977년까지 파견된 광부는 8395명이었다. 이중 광부 65(자살 4명 포함), 간호사 44(자살 19)이 근무나 자살 등으로 사망하는 고통을 겪었다.

당시 서독에서 차관을 제공할 때는 보증이 있어야 했는데 한국은 보증설 만한 게 없어 간호사와 광부가 받는 임금을 담보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광부와 간호사 파견이 이뤄졌다. 상업차관 3000만 달러에 대한 담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당시 인력난을 겪던 서독과 구직난으로 힘들었던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광부, 영자(김윤진 분)는 간호사였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외로움을 달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려고 결혼하는 사례가 많았다. 남해에 독일에서 돌아온 광부와 간호사 가족이 사는 독일마을이 조성돼 있다.

 

▲  가족 여행 중, 제주 마라도에서 작품을 구상중인 홍찬선작가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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