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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來

사랑을 위해 서울대 중퇴한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한국여성詩來>

참된 사랑은 시간도 공간도 뛰어넘는다. 소녀의 가슴에 품었던 初戀은 60년이 지나도 풋풋한 사랑으로....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7/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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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한국여성詩來 23>

사랑을 위해 서울대 중퇴한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

'진달래'의 시인 신동엽을 키웠다/ 如心 

 

▲     © 운영자

 

고달픈 사랑은 짧았고

달콤한 인생은 길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돈암동 고서점에서

여고 3학년과 대학 졸업생이

철학책을 이야기 고리로 엮인 것은

 

이 땅에 오기 전부터

하늘에서 만들어진 사랑이었다

 

크고 빛나는 눈을 본 순간

두 눈이 커졌고 두 볼은 발갛게 익으며

가슴이 쿵쾅거리고 생각의 회로가 멈췄다

가을의 동경(秋憬)은 돌 숲(石林)*

첫 만남부터 그렇게 빨려 들어갔다

 

▲     © 운영자

 

편지는 편지로 이어지고

머리는 가슴의 포로가 되어

만날 때마다 튄 불꽃은

어렵게 들어간, 누구나 부러워한

서울대 철학과를 스스로 그만두고

가난한 부여 촌놈과 결혼으로 이끌었다

 

석림의 고향 부여로 내려가

초가삼간에 신방을 차리고

숙명 같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읍내에 양장점을 열었지만

생활은 마음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맏딸이 태어나고

석림이 힘들게 얻은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를 국민방위군 때 얻은 폐디스토마로

각혈하면서 그만두게 되자

추경은 돈암동 친정을 돌아갔다

 

알콩달콩했던 신혼은

병마와 가난의 심술로 1년여 만에 헝클어졌지만

추경은 마음 담은 편지로 석림을 북돋았고

석림은 생이별의 아픔으로 시 쓰기에 전념해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뽑혔다***

 

사랑은 병마와 가난을 이겨냈다

성북구 동선동, 새 보금자리에서

꿈같은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갔다

 

▲     © 운영자

 

영원할 것으로 믿었던 사랑은

결혼 12년 만에 세 자녀를 남겨두고

마흔이 채 되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석림이 백마강과 부소산 바라보며

시 쓰던 장독대 뒤 감나무만 그 자리 지키고

 

그대로 주저앉기엔 현실이 냉혹했다

여섯 눈 말똥말똥 뜨고 나만 바라보는

어린 딸, 두 아들과 살기 위해선

어금니를 질끈 악물어야 했다

출판사에서 일본어 번역이 서투르다는

수군거림을 더 나은 번역으로 잠재우며,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는 것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먼저 떠난 사랑에게 전하고

딸과 아들들에게 알려주었다

 

떠난 사람은 떠난 이유가 있듯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서 해야 할

일과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짚풀문화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석림의 짙은 그늘에서 벗어났다

 

짚신 멍석 삼태기 쇠죽 초가집으로

반만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던 짚풀이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아파서

 

평생을 농업학자로 산 아버지와

촌놈 시인으로 짧게 살다 간 사랑의

말로 못한 뜻을 이어받으려고

 

짚풀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짚풀의 맛과 멋을 알려주기 위해*****

 

▲  [사진=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몸과 마음을 오롯이 쏟는 사이에

사랑이 떠난 지 쉰 두해가 흘렀다

사랑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음은 여전한데

몸은 마음과 따로 놀고,

 

그래도 다시 사랑을 만났을 때

할 이야기가 많이 있어 미소 짓는다

 

거의 죽어가던 뒤뜰 감나무에

다시 감이 열렸다는 부활과******

 

사랑이 남긴 시와 육필이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든다는 것과

 

사랑의 딸과 아들이

멋지게 컸다는 사실을

 

소곤소곤 다듬으며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당겨 이으며 

 

▲  짚풀 생활사 박물관   

© 운영자

 

* 추경(秋憬)과 석림(石林)은 각각 인병선과 신동엽(申東曄, 1930~1969. 4. 7)의 필명(筆名).

** 1953년 부여에 설립됐다. 1994년에 주산산업고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 신동엽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라는 장시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해 시인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해 고등학생이던 김재원도 시 <()>이 뽑혀 시인으로 데뷔했다.

**** 충남 주여군 부여읍 동남리 501-21에 있는 신동엽 생가에 걸려 있는 인병선 관장의 시 <생가(生家)> 끝 연.

***** 홍찬선 <짚풀생활사박물관>, 월간시, 20114월호(통권 87), 163.

****** 인병선 관장이 신동엽 시인과 신방을 차리고 살았던 생가와 신동엽문학관 사이 뜰에 아담한 감나무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김형수 신동엽문학관 관장은 고사(枯死) 직전까지 갔던 이 감나무의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두엄을 충분히 주자 되살아나 감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 인병선(印炳善, 1935. 6. 26~); 평남 용강에서 눙업경제학자 인정식의 딸로 태어났다. 평양에서 보통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중 1.4후퇴 피난대열에 끼어 어머니와 단둘이서 제주도로 피난 왔다. 오현중학교 마당 천막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1953년 고3 때 서울 이화여고로 전학했다.

그해 겨울, 돈암동 네거리 고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신동엽 시인을 만났다. 인병선은 이듬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1957년 결혼해 신동엽의 고향인 부여로 이사했다. 결혼한 지 13년 되던 해인 196947, 신동엽이 간암으로 귀천한 뒤, 출판사에서 번역 등을 하며 12녀를 키웠다.

 

 

아이들이 자라고 생활이 안정되자 짚풀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짚풀 관련 자료를 모아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만들었다. 신동엽 시인의 집터와 관련 자료를 부여군에 기증해 <신동엽문학관>을 여는데 기여했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 앞에 그가 쓴 시 <생가(生家)>가 걸려 있다.

▲  현장의 작가 홍찬서..취재차 들렸던 의림지에서...셀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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