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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來

외모 멍에를 국민가수로 승화시킨 인순이의 다문화 사랑<한국여성詩來>

인순이만큼 인기 있는 가수도 드물다. 인순이만큼 눈물 많은 가수도 드물다. 탄생의 불리함을 극븍하면서...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9/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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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31>

외모 멍에를 국민가수로 승화시킨 인순이의 다문화 사랑

 해밀학교 세워 배움 기회 줘

 

▲    사진..인터넷 캡쳐 © 운영자


남과 다른 외모가 멍에였다

친구들이 자꾸 놀려 어렸을 때부터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결혼도 아이 낳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이 고통을 또 겪게 할 수 없었기에

 

살아야 하는 절박함은 두려움을 뚫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갓난아이 시절에 훌쩍 떠나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잊고 

홀로 된 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기에

 

희자매 멤버로 참여해 

바니걸스 숙자매와 함께 

걸 그룹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으나 

‘너는 지는 해 그 애는 뜨는 해’라는 독설로

길고 긴 슬럼프를 겪었다

 

사랑은 질긴 운명보다 강했다

우연하게 찾아와 필연으로 맺었다

딸을 미국에 가서 원정 출산했다

혼혈이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받았던

차별을 받지 않고 살게 하고 싶어서,

원정출산을 마음껏 욕해달라고 떳떳하게 밝혔다, 

 

▲     © 운영자


나이 마흔에 그동안 불렀던 트로트를 넘어

소울이라는 새 장르에 도전했다, 강한 정신력으로

‘밤이면 밤마다’를 사랑했던 세대뿐만 아니라

2030 젊은이들에게도 가깝게 다가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단 하나뿐인 딸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서른여덟에 늦게 낳은 딸, 세인이!

네 살 아래 남편을 만나

천사처럼 다가온 보물1호 딸이 

벗이었고 의미였고 행복이었다 

 

한 번에 뻥 뜬 가수가 아니니까

크고 작은 실패들의 시간이 만든 성공을 보고

사춘기와 갱년기의 살얼음판을 거치면서

껍데기만 화려한 삶은 살지 말자는 

좌우명으로 만들어 살았다*

 

▲   사회봉사 홀동에도 적극적인 인순이...(인쪽에서 여섯번째) © 운영자

 

딸을 스승 삼아 아버지도 용서했다

철부지 어렸을 때

벗으려 해도 벗기 버거웠던 멍에를 씌운

아버지를, 뉴욕 카네기홀에서 

놓아드리고 평생 지고 살았던 

멍에를 벗어 털어냈다 

 

당신들은 모두 내 아버지입니다

6.25전쟁 때 저처럼 한국에 자식을 남겨 놓고

잠 못 들어 하시는 분들은 이제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대한민국은 이제 잘 살게 됐고

저 또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이렇게 컸습니다**

 

가수로서 삶을 끝낼 수는 없었다

그가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도전,

새로운 일을 다시 찾았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대안중학교 해밀학교를 세웠다***

 

▲     © 운영자

 

다문화 고등학생 졸업률이

28%밖에 안된다는 말을 듣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이들의 상처를 

자신이 감수해야 했던 아픔을 보듬어 주려고

 

쉰아홉 살에는 보디 볼딩도 했다

그냥 취미 삼아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바 코리아에 참가해 퍼포먼스에서 2등을 차지했다

 

해보는 게 낫지! 왜 안해?

가수가 된지 43년이나 된

예순넷 인순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라는 

깊고 넓은 진리를 잔잔하게 일깨우며

그만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     © 운영자

 

* 박세인, <엄마 인순이, 한 방에 뜬 가수가 아니라서…>, 『한국일보』, 2021년 3월5일자 인터뷰 기사 중에서. 박세인은 서울에 있는 한국켄트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다가 그만두고 한국에서 스타트 업을 하고 있다. 

** 인순이가 2010년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6.25참전용사와 16개 참전국 대사 부부를 초청해 펼친 공연에서 히트곡 ‘아버지’를 부른 뒤 한 말. 

*** 해밀;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 해밀학교; 인순이가 다문화가정의 학생을 위해 강원도 홍천군에 세운 중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    

 

**** 인순이(1957. 4. 5~); 본명 김인순(金仁順).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백의리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인순이가 아주 어렸을 때 무책임하게 떠나, 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12살 때 미국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미국행을 제안 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생각해 거절했다고 한다. 연천의 청산중학교를 졸업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족 부양을 위해 가수가 되었다.

1978년 그룹 희자매의 <실버들>로 데뷔한 뒤 1980년 <인연>으로 솔로로 전향했다. 1994년 대학교수 박경배와 결혼했고, 이듬해 외동딸 세인을 낳았다. 2010년2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두 번째 공연을 했다. 조선일보에서 선정한 ‘시대별 여자 보컬리스트’에서 1980년대에 이선희에 이어 2위, 2000년대 3위로 뽑혔다. 헤럴드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노래 잘 부르는 가수에 조용필과 이승철에 이어 3위에 올랐다. 

40여 년 동안 가수활동을 하면서 팝 발라드 댄스 디스코 재즈 트로트 국악 락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하는 최고의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표곡으로 ‘밤이면 밤마다’ ‘아버지’ ‘거위의 꿈’ ‘친구여’ 등이 있다. ‘히트 곡 없는 국민가수’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본인만의 히트곡이 적다. 

199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2006년 여성신문사 주최의 미래여성지도자상을 받았다. 2013년에 다문화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해밀학교를 홍천군에 세웠다. 쉰아홉 살이던 2015년에 보디빌딩에 도전, 나바 코리아에 참가해 스포츠 모델에서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퍼포먼스에서 2등을 차지했다. 

 

▲    쉼 없는 취재와 집피 사이에 짬을 내어.... 제주 일출봉에서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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