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52) 마무리
끝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함을 늦게야 터득한 인생 늦깎이
|
졸업을 빨리 해야 ‘등록금 안 낸 아이’라는 렛델도....
[yeowonnews,com=구자관]금요일만 되면 가슴 설레이는 주말(週末)의 감각을 생생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대개 젊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주말을 계획하고, 어떻게 보낼까를 구상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 없다.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그럴 연령대에서는 사랑 이후, 그러니까 현재의 사랑이 끝 모르게 진행될 것을 예감하고 싶어한다.
여기서 “예감한다”가 아니고 “예감하고 싶어한다”로 말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의 불가사의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끝이 없어 보이는 사랑은, 그러나 사실 끝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어서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끝자락에 서고 싶어한다. 여기서 “끝자락에 선다”가 아니고 “서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젊은 사랑’의 가변성(可變性)을 암시한다. “사랑은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애정영화의 대사처럼 들리기도 할 이 한 마디는, 젊은 시절에 우리가 겪는 ‘사랑의 아슬아슬’을 겪어본 사람이면 완전히 이해할 것이다.
‘사랑의 끝자락’, 또는 ‘사랑의 마무리’를 얘기하다 보니, 이 글이 독자들에게는 사랑타령이나, 말랑말랑한 멜로드라마의 예고편처럼 전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본론은 사랑론이 아니라 마무리론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All'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희곡이 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살펴 보면, ‘끝이 좋으면 다 좋아!’가, 결코 만만한 코미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끝 뿐만 아니라, 시작과 중간과정까지 다 좋아야, 사랑도 인생도 좋다고 할 수 있다는 주제를 셰익스피어는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과과정을 보면, 끝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 졸업은 다음 단계의 상급학교로 가는 계단 위에 섰음을 의미한다. 나는 그 ‘다음단계로 가는 계단’의 입구에서 주저앉아 보기도 했고, 졸업할 때를 간절히 기다려 보기도 했다. 졸업을 해야, ‘등록금 안 낸 아이’라는 렛델을 뗄 수가 있었을 테니까.
|
눈물이 내 인생을 대표하는 상징은 아니겠지만.....
약점을 감추면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나의 글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천당문 출입증을 받아보려는 심정으로, 쓰라리고 아픈 과거를,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지나치게 솔직한 필치로 쓰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그간 독자들께서 읽어주신 이 글이 양심선언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나를 알리려고 기억력을 더듬고, 자주자주 메모도 한 것은 사실이다. “불행은 과장되고, 희망은 찾지 못했거나 숨겨져 있다”고, 전기문학(傳記文學)을 혹평한, 어느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어 본 일이 있다.
내가 쓴 이글을 전기문학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80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술서(自述書) 기록하듯이 썼다는 사실, 그리고 가급적 기억력 속의 진실과 사실에 충실하려고 애썼다는 점을 독자들께서 알아주신다면, 더 바랄 것은 없겠다.
처음엔 이렇게 52주씩이나, 12개월 동안이나, 꼬박 1년씩이나 이 글을 계속 쓰리라는 생각은 물론 없었다...고 이렇게 지금 독자들께 말씀드리는 것은, 또 하나의 고백이라면 고백이고, 52주를 버텨나간 나 스스로에 대한 대견스러움의 발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이 나이에 재출발은 아니지만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는 싶었다. 그간 살아 온 이야기의 정리라면 정리이고, 나이 먹어 시도하는 자기충전이라면 충전이라는 점을, 특히 매주 빼놓지 않고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 대한 인사라면 인사다. 90도 허리 굽힌, 솔직하고 겸손한 인사라고 읽어주시면 마음 편하겠음을 말씀 드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금도 생각한다. 이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너무 늦었다거나, 이제 철이 드느냐는 핀잔 같은 지인(知人)들의 솔직하고 우정 어린 충고들이, 그동안 간간히 전화나 카톡, 또는 메시지로 답지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인사를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반응의 메시지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나의 어둡고 힘들었던 과거와, 그걸 극복하려는 노력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분도 여러분 계셨다. 모르는 독자들로부터 메시지도 많이 답지했다.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 못 들던 밤의 눈물을 더 이상은...
여기 여원뉴스에 연재된 내 얘기를 읽고 감동했다는 분들도 많고,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보내준 독자들도 계신다. 가까운 분들에게 카톡으로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어떤 분은 자기에겐 보내지 말아 달라는 분도 계셨다. 그런 분들은 감동도 감동이지만, 가슴 아프다는 단서(但書)를 첨부하셨다.
그런 분들의 의견에도 감사한다. 그런 의견 자체가 내게 보내는 관심이라는 점에 이르면, 그런 분들이 진짜 내 글을 깊이 읽어주신 독자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더구나 자신이 쓴 글을 누구나 다 좋아하리라는, 좀 망상 같은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독자들께는 다만 감사할 뿐이다.
격려를 보내준 분들이 많았다. 앞으로 남은 생애, 더 멋지고 더 활발하게, 더 발전적으로 보내라는 격려의 말씀을 읽고는, 솔직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워낙 질척거릴 정도로 눈물 많은 인생을, 그 전반부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칭찬의 말씀에도 눈물 흘리는 버릇(?)을 아직 못버리고 있다.
이 눈물이 내 인생의 상징은 아니겠지만, 내 인생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건 사실이디.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괴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를 위로하며 잠 못 들던 밤의 눈물을 더 이상 흘리지 않게 된 것만도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글의 전반부를 다시 읽고 나서 느낌은 솔직히, 나 혼자서만 고생한 것처럼 쓴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고생한 것처럼 느낌을 주는 글을 썼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부끄러움이다.
그래도 인생을 살면서, 특히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한가지 원칙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 남에게 이익은 못 줄망정 손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각오. 그건 지키며 살았다. 더구나 사업가로서, 남을 딛고 일어선 일은 전혀 없다. 그런 일을 한 적도 없고, 물론 그럴 생각도 안하고 살았다.
|
훌륭한 분들과 함께 사는 행복이, 재산 이상으로 소중한...
물론 고백을 하자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놓고 보면, 부족한 것이 많아 부끄럽긴 하지만, 죄 지은 일 없이, 누구에게 피해 준 일이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은 자랑거리는 아니더라도, 후회할만한 인생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자그마한 위로이기도 하다.
주변에 흘륭한 분들이 많다. 고개 숙여 배우고 싶은 분들도 많다. 거듭되는 새벽 조찬회에서 만나는 분 가운데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다. 장애인 등 불우한 사람을 도와주기를 20여년 이상 해오시는 분도 있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매일 1만원씩 수십년을 보내주고 계시는 분도 있다.
그런 존경하는 분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이 내게는 귀한 재산 이상이다. 감사만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여원뉴스에 쓴 이 글 여기저기에, 나만 고생한 것처럼 쓴 것을 되돌아보면 부끄럽다.
남에게 이익은 못 줄망정 손해를 끼치진 말자고, 좌우명처럼 지켜온 진리를 마지막 날까지 지니고 가기로 이 자리에서, 세상을 향하여 다시 한 번 약속한다. 결과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과정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내게 일깨운다.
끝으로 지금까지 1년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한다. 또한 이 글을 귀한 지면에 실어주신 여원뉴스에 감사한다.(끝)
|
|||||||||||||||
|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