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착취물 소지 402건 중 실형 '0건' ... '껍데기만 '엄정'

이정운기자 | 기사입력 2022/01/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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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엄정'... 성착취물 소지 402건 중 실형 '0건'

디지털성범죄전문위 4차 권고안서 '양형 조건' 법 개정 권고... "피해자 관점 명시"

 

[yeowonnews.com=이정운기자]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N번방 사태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가 6일 4차 권고안을 내놓으며 분석한 결론은 "법 개정 취지에 부합하는 형이 선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였다.

 

▲ "갓갓"으로부터 텔레그램 "n번방"을 물려받아 운영한 닉네임 "켈리" 신아무개(32)씨의 항소심 재판이 열리기로 한 2020년 4월 22일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 회원들이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신씨 사건을 항소하지 않은 무능 검찰과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안일한 사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신씨는 항소심을 앞둔 지난 17일 항소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함에 따라 1심 형량인 징역 1년이 그대로 확정됐다.ⓒ 연합뉴스     © 운영자

 

1년동안 248건 불법촬영, 참작 사유가 "용서 구할 방법 없어"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최소 1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범죄에 대한 최근 판결 추이가 특히 그렇다. 디지털성범죄전문위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시행된 지난해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발생한 관련 범죄 402건 1심 판결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0건. 단 한 건도 없었다. 유죄 판결의 대부분이 집행유예 239건, 벌금 159건 등이었다.

 

전체 디지털 성범죄 사건 판결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관련 범죄 1심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평균 약 9%. 벌금형이 53% 정도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실형이 선고됐다 해도, 80% 이상이 10개월 이하의 징역형에만 머물렀다. N번방 방지법 등 성범죄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개정되어 온 양형 상향책은 실제 판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성범죄 전문위는 그 원인을 '가해자 중심의 양형'으로 꼽았다. 실제 판결이나 양형조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기준이 가해자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위가 이번 권고안에서 ▲양형 조건에 피해자 관점의 요소가 명시되도록 형법 개정 ▲양형조사 시 피해자 관련 사항 비중 확대 ▲증인 신문 외 피해자 진술권 보장 등을 제시한 이유다.

 

가해자 관점의 양형요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경사유인 '진지한 반성'은 그 검증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도 도마에 오른다. '처벌 불원'이나 '처벌 전력 없음' 등도 종종 등장하는 감경요소다. 전문위는 가해자들이 실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나 사과 없이 '성폭력단체 기부 내역' 등으로 감경을 받아내도록 하는 '감경 컨설팅'이 성황 하는 현실도 함께 언급했다.

 

실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지난해 6월 선고된 불법촬영 범죄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감경을 위한 참작 사유 일부로 "범죄 전력이 없고" "피해자들의 신원을 알 수 없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1년 동안 248회에 걸쳐 지하철역 등에서 치마를 입은 여성들의 하체를 불법촬영한 범죄였다. 가해자는 이 재판에서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 받았다.

 

'단죄 못하는 양형 권행'... 전문위 "양형 조사 시 피해자 관점 높여야"

 

가해자의 처벌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수록, 피해자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전문위는 "처벌의 불확실성에 따른 보복 우려 등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어 성범죄의 숨은 범죄화를 초래하고, 형벌의 일반 예방적 효과를 반감시키며, 범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19년 서울시가 조사한 서울 여성들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실태 인식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530명 중 353명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이유로 '처벌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전문위는 이번 권고를 통해 실제 재판 실무에 영향을 미치는 법제 제·개정을 통해 문제의 '양형 관행'을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가해자 관점의 참작 사유로 구성된 형법 51조에 피해자의 입장 등을 담도록 하고, 법정에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 양형에 반영하도록 형사소송법 상 피해자 진술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불법촬영물을 촬영, 유포한 디지털성범죄자들의 감경 요소로 적용되는 '피해 확산 방지 조치 여부'도 더욱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위는 "양형조사 단계에서 동일 영상물 또는 복제물 존재 및 삭제 여부를 필수적으로 (보호관찰관 등이) 직접 확인해 추가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명확히 점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아래는 디지털성범죄전문위가 이날 발표한 4차 권고안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양형의 조건에 피해자의 연령, 피해의 결과 및 정도,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 등 피해자 관점의 요소가 명시되도록 개정할 것.

 

- 성범죄 사건 양형조사 시 피해자 관련 사항의 비중을 높이고, 양형인자 기초자료에 관한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검증을 실시해 양형 기준이 적정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판결 전 조사'에 관한 성폭력처벌법 제17조 등을 개정하고, 디지털성범죄 사건의 추가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조사 실무를 정비할 것.

 

- 헌법 상 보장된 피해자 진술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형사소송법에 증인신문의 의하지 않는 피해자 진술권 보장에 관한 근거 규정을 마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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