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구자관칼럼 (50) 우정...남자들이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을 때

어려웠던 한시절 고마웠던 친구와의 우정을 잊지 않고 10년 넘게 그 친구를 돌보고 있는 자상한 우정은....

구작관 | 기사입력 2022/06/10 [19: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대표첵임사원 구자관칼럼 (50) 우정 

남자들이 네 것 내 것을 서로 따지지 않을 때 

누구나 친구 중엔 학교 친구가 가장 많겠지만.. 

 

▲   그는 어려서 사귄 친구는 별로 없지만, 사업 시작 후에 사귄 친구는 누구보다도 많아서....  © 운영자

           

역경은 누가 진짜 친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늠해준다

[yeowonnews.com=구자관] 우정은 남자들 세계에선 중요한 가치로 되어 있다. 남자들 세계에선 우정 빼놓으면 얘기가 안 된다, 할 정도로, 우정이 강조되고 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도 우정은 빼놓을 수 없는 인간적 가치이고, 사업적 자산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 속에는 우정이, 인간에 대한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역경(逆境) 속에서 이루어지고 이어지는 우정은 흉내 내기 힘든 높은 인간관계의 가치체계를 암시한다.

 

역경은 누가 진짜 친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늠해준다, 는 우정의 평가기준을 나는 믿는다. 진짜 우정은 어떤 경우에도 싫증나지 않는 인간관계임을 나는 믿는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 그 중에서 네것 내것 없이 살아오는 친구는 3명 정도밖에 없다. 나는 학교를 제대로 못다녀서 친구가 별로 없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녔으면 친구가 많을 텐데, 그야말로 네것 내것 따지지 않고 사귈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나는 정상적으로, 나이에 맞게 제때제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네것 내것 없이 오고갈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녔고, 중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고등학교는 야간을 다녀서, 고등학교 친구도 별로 없는 편이다. 야간 나온 친구들은, 살기에 급급해서 사귀는둥 마는둥 하는 친구가 많았고, 게다가 나이도 들쑥날쑥해서 5살이나 차이 나는 친구도 있다.

 

한창 친구 사귈 그 나이에, 친구와 사귀고 지낼 그 나이에, 낮엔 일하고 밤엔 야간학교에 다닌 덕분에 친구가 많지 않다. 대학에는 61세에 들어갔으니 그 때 친구들과의 나이 차이는, 친구지간이라기보다 거의 부자지간에 가까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고, 대학 다니며 사생할을 같이 영위하지 못했으니 역시 친구가 많지 않다.

 

▲   정상적인 학창생활을 영위하지 못해 학교 친구는 별로지만, 사회 친구는 누구보다 많아서...  © 운영자

 

275만원 투자한 친구....이익 발생하면서 갈라서게 돼

군대 친구도 많진 않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사귄 친구 하나와 오랜 우정을 유지해 왔다. 그 친구는 공부를 꽤 잘했다는데, 고등학교 재학중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껴 공부를 소흘히 해서 서울대 가려다가 못갔다는 친구다. 그는 고려대학교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가정은 부유했다.

 

그는 비철금속 회사의 사장 아들이었다. 당시 염천교 부근에 비철금속 가게가 많았는데, 그런 비철금속 회사의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는 그때 자기 소유의 자가용이 있을 정도로 부자집 아들이었다. 

 

내가 상병 시절에 이등병으로 입대한 친구였다. 나를 만나자마자 나를 좋아한 친구였는데, 그의 말로는 내 인간성이 좋아서 가까이 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한 번은 그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했는데, 그의 집은 당시 만리동에 있었다. 주택 콘테스트에서 1등한 사람이 설계한 집이었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했디. 그 당시 나는 미아리 산꼭대기 판자촌에 살 때였다.

 

그러나 가정의 빈부격차에 상관 없아 우리는 그야말로 절친이었다. 제대 후에도 서로 오고가며 지낸 친구였는데, 내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니, 선뜻 좋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동업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자금은 그가 대고 일은 내가 하는 형식이었다. 

 

그는 275만원을 투자했다. 275만원... 당시 35평 집 한 채 값이 50만원 하던 때이니, 50만원짜리 집 다섯채 값을 투자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 돈의 액수가 어땠을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거금이었다.

 

우리의 동업은 몇 년 계속되었다. 이익이 발생하면서 동업은 계속되었는데, 이익에 대한 다툼과 갈등이 생겨서, 몇 년간 함께 지내다가 서로 갈라지기로 했다. 그 친구는 그 275만원은 나중에 갚으라면서 나와의 공동사업에서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갚을 능력이 없었으니, 그가 투자한 돈은 결국 부채로 남게 되었다.

 

▲   회장실이라기에느, 너무 좁고 검소한 집무실.. 일하는 공간이 이 정도면 만족이라고....   © 운영자

 

 내가 1년에 스물네번 이사하던 시절...채용증 요구하는 친구

그런데 얼마후 박정희 대통령의 채권 동결이 발표되었다. 이자를 줄 수도 없고 해서 고민중이었는데, 탕감 받을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채무 액수를 신고를 못하고 있었는데, 내 동생이 그 채무를 신고하게 되었다. .

 

그렇게 되자, 그 친구가 와서 다시 채용증을 쓰라고 요구했다. 그가 요구하니, 다시 채용증을 써주었다. 옛날 채무는 무효가 됐으나, 채용증 써주었으니 새로운 채무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아마 자기 아버지 돈으로 나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나에게서 새로운 채용증을 받아갔다. 내가 한지붕 3가족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1년에 대여섯번 이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채용증을 받아가는 그를 원망하거나, 야속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

 

그런데 얼마후 그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는 그렇게 나를 찾아와서 채용증 내밀며 받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받지 않자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이 돈 포기하겠다. 나는 이 돈을 포기할 수 있지만, 너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채용증서를 받지 않았다. 그에게 간곡히 말했다.

내가 갚아주마. 나는 이 채용증서를 돌려받을 수가 없다.”

그러자 그 친구는 채용증서를 들고 내 누이를 찾아갔다.

 

나는 돈은 잃어도 되지만, 자관이를 잃을 수가 없어요. 이 채용증 없애야 하는데 누님이 받으세요.”

 

그러나 누님도 받을 수가 없다, 그랬더니 누님 앞에서 그 채용증서를 태워버렸다. 공증까지 한 채용증서였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그 채무는 살아있었다. 그런데 나는 회사가 잘 되는데 그 친구는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채무를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받지않았다.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내가 조금 여유가 생겼다. 내가 갚겠다.”

알았다.” 

 

그는 알았다고 말은 하면서,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해서 그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네가 언제든 필요하면 전화해라. ”

알았다.”

 

그러고도 내가 갚으려는 돈을 찾아갈 눈치도 안보이더니, 어느날 전화가 왔다.  “1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물론 나는 얼른 보내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전화를 했다.

내가 이 돈 며칠 후 돌려주마.” 이러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 말라.”고 해도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짜가 되니까 천만원을 보내왔다 

 

▲   가끔 사원들의 휴게실에 들러 사원들과 담소도 하고...사원들이 부편한 점은 없는지  살피기도 하는... © 운영자


친구가 꿔간 돈 갚아 오던 날, 내 눈물이 터진 이유

며칠 후 이번에는 3천만원을 요구했다. 회사 경리 책임자에게 얘기해서 3천만원을 보내주었다. 그는 자기가 변상한다고 내게 약속한 날짜에 3천만원을 보내왔다. 3천만원에서 275만원은 빠져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꾼 275만원을 제외한 돈을 보내온 것이다. 

 

그 돈을 받으며 나는 울었다. 어쩌다가 친구 사이에 돈이 오가고, 그 과정에서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터진 울음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가진 것이 없는 내게 그렇게 따뜻하게 해주던 친구가, 이번엔 입장이 반대가 되어... 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그가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집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제 집도 없어지고...., "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몇천만원인가를 보내준 기억이 난다.

합치면 거의 1억 가까운 돈을 그에게 보내주었다.

물론 문서도 보장도 없이 그냥 보내주었다.

 

생활비도 없는 것 같아 매달 얼마씩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그의 통장으로 보내면 차압당한다고 하니...매달 비서실에 와서 가져가도록 했다. 그 후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통장을 하나 개설해서 지금까지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해 동안 매달 생할비를 보내고 있다.

 

전화는 가끔 주고 받지만 만나지는 않고 있다. 그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만나지는 않고 있다.  

 

구작관의 다른기사 보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wonnews.com
민들레 22/06/11 [08:42] 수정 삭제  
  회장님 글을 읽고 저도 비슷한것 같네요 우리 클때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형편이 좋을때였는데 저는 거기가 느끼는 온도차가 너무 커서 친구를 사귈줄 몰랐습니다 회장님 언제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인생친구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일방적 생각을 해봅니다 ㅎ 회장님 항상 건강하시길요^^~
정원이 22/06/11 [12:32] 수정 삭제  
  소설 같은 만남이네요.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시는 회장님 존경합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그 친구도 분명히 잘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대표책임사원,#구자관,#우정,#친구,#채용증,#부담,#여원뉴스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