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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조국 독립을 위해 하늘에서 항일투쟁한 권기옥 <한국여성詩史>

앞선 시대의 여성들은, 그 시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역사를 이끌었다. 여류 비행사..역사의 날개가 되어...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1/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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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26>

조국 독립을 위해 하늘에서 항일투쟁한 권기옥 

 성층권을 날은 대한민국 첫 여성 비행사

 

▲     © 운영자

 

나의 이름은 갈례(葛禮)였다

아들을 원했는데 딸이 태어났으니

어서 저 세상으로 갈 애라는 뜻으로  

날 때부터 아픔을 고스란히 받았다

 

대한제국이 

근대화에 골몰하고 있을 때

시골은 가난했고 

아들바라기는 여전했고

갈례는 그 모든 모순을 

떠안고 이 땅에 힘들게 왔다

 

어린 갈례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더 어린 동생을 돌보면서도

틈만 나면 책을 들여다봤다

 

▲    중국에서 받은 항공사 자격증 © 운영자

 

꿈을 좀처럼 버릴 수 없었다

커다란 쇳덩이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새처럼 자유롭게 오고가는 꿈을 

나도 비행사가 되자는 꿈을 

하늘을 날아 아픔 없는 땅으로 가는 꿈을

 

꿈을 가지라우

꿈이 없으면 송장이나 다를 게 업디 않가서

특히 젊은이들은 꿈이 있어야 디

어느 나라든 젊은이들이 꿈이 있고 패기가 있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있디 감히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우 못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지금 열댓 살이라면 우주비행사를 꿈 꿀 것이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두드리면 문은 열리게 마련이었다

은단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열한 살 어린이의 꿈은

교회에서 송현소학교로 보내주고

학교에선 월사금을 면제해주어

기옥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왼쪽에서 두번째)과 교관들......  © 운영자

 

넘치는 학업 열정은 

기옥을 숭의여학교로 이끌었고

송죽결사대에 들어 

3.1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상하이로 망명해 항일독립운동에

온 몸을 평생을 받쳤다

 

일왕의 머리에 폭탄을 투하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거듭 다진 비행사의 꿈을 

임시정부 도움으로 중국에서 펼쳤고

이룬 꿈은 항일독립투쟁에서 빛났다

십년 동안 중국군에서 복무하며 

칠천여 시간을 날아 일제를 꾸짖었다

 

중국 창공에 조선의 붕익(鵬翼)

중국 하늘을 정복하는 조선 용사

그중에서 꽃 같은 여류 용사도 있어

여류 비행가 권기옥 등 국민군에서 활약***

 

▲   권기옥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  © 운영자

 

꿈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다

중일전쟁 때 상해 상공에서 폭격비행도 했지만

기옥의 간절한 소망이던

조선총독부 폭격을 끝내 하지 못해

일왕의 머리에 폭탄을 투하하지 못해

죽을 때까지 한으로 남았다

 

일제는 뜻하지 않게 갑자기 망해

자력독립의 길마저 빼앗는

몽니를 끝까지 부렸다

그래도 광복이 좋았다

 

가난이라는 벽도

여자라는 질긴 멍에도

식민지라는 억센 시련도

항일투쟁이라는 시대의 소명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고 마침내 이겨내

몰래 떠났던 고국에 떳떳이 돌아왔다 

 

갈례는 아버지 뜻을 어기고

여든여덟 살까지 오래 살며

최초 여성 비행사 공군의 어머니

독립운동가 출판인 사회사업가로서

기옥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활짝 펼쳤다 

 

▲   신문에 실린 권기옥 관련 기사  © 운영자

 

 

 

* 권기옥 항일투사가 전 재산을 털어 장학사업을 하며 젊은이들에게 남긴 말. 

** 권기옥 항일투사가 비행사가 되기 위해 당계요(唐繼堯) 운남성장을 만나 한 말.

*** 1926년 동아일보 보도

 

**** 권기옥(權基玉, 1901. 1.11~1988. 4. 19): 우리나라 첫 여성 비행사. 평남 평양부 대흥면 상수구동에서 권돈각과 장문명의 2남5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평양의 숭의여학교 재학 중에 항일비밀결사인 <송죽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3.1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왜경에게 체포돼 3주 동안 구류돼 고문을 받았다. 그 뒤에도 임시정부 요원들과 연결돼 독립자금을 모집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1920년에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와 중국 요인의 추천을 받아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 1925년에 비행사 자격을 획득했다. 중국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로 10여 년 동안 복무했다. 

1928년에 독립운동가 이상정과 결혼했다. 이상정은 항일저항시인 이상화의 형이다. 1940년 공군 중교에 이를 때까지 줄곧 중국군에서 항일투쟁에 나섰다. 1943년에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사교부장으로 활동하다 광복 후 1949년에 귀국했다. 

귀국 후 전 재산을 장학사업을 위해 기부하고 장충동2가 낡은 목조건물에서 여셍을 보내다 1988년에 87세로 서거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2020년 7월3일,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에 동상이 세워졌다.    

 

▲  국립항공박물관에 조성된 권기옥의 동상 (서울 강서구 소재)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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