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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최초 맹인박사 강영우의 눈과 지팡이 된 석은옥<한국여성詩來>

한국 여성은, 남편의 단순한 내조자나 '안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한 남자의, 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5/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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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14> 

최초 맹인박사 강영우의 눈과 지팡이 된 석은옥

한국여성의 가치 높였다

 

▲     © 운영자

 

그것은 하늘의 부름이었다

그의 눈이 되라는 부름!

그의 지팡이가 되라는 소명!

그의 얽힌 마음을 풀어주라는 명령!

 

부름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일 년,

중학생의 자상한 누나로 육 년,

함께 살기로 약속한 약혼자로 삼 년,

아내와 지아비로서 삼십사 년…  

 

사랑은 위대했다

남들이 눈멀었다고 거부하며 스스로 눈멀었음을 모를 때 

남들이 말로만 안타까워하며 행동을 머뭇거리기만 할 때

남들이 내 일이 아니라며 자꾸만 발길 돌려 멀어져 갈 때

 

선뜻 나섰다

머리보다 가슴이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     © 운영자

 

몸이 불편한 것은 벽이 아니었다

장애는 함께 빛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

늘 꽃만 피어 있지는 않았지만

너의 힘듦보다 나의 아픔이 더 절실해

불쑥불쑥 화딱지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사랑으로 열린 마음으로 따듯한 손길로 

뜨거운 눈물로 함께 씻어냈다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여윈 뒤

열다섯 살 때 축구하다 눈에 공을 맞아 실명하고

어머니가 잇단 충격으로 하늘소풍을 떠나자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자신은 장애인 재활원으로 뿔뿔이 헤어져

방황하며 자살까지 여러 번 시도했던 

강. 영. 우.*

 

숙명여대 영문학과 1학년이었던 

석은옥이 강영우를 만난 것은 숙명이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기댈 곳 없이 따듯한 품이 그리웠던 두 살 아래 영우는

누나와 동생으로 잘 어울렸다

 

스스럼없이 누이동으로 산 정은**  

스스로 그렇게 이성간의 사랑으로 나아갔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연세대 학생이 된 영우를

은옥은 엄마를 설득해서 남편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들의 싸늘한 눈초리 손가락질 혀차기를 뚫고…

 

▲     © 운영자

 

미국 유학은 새로운 길을 찾는 모색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절대 좌절하거나 울지 않았다

성취지향적 가치관으로 맹인이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보람과 승리감을 느끼며 성취감을 만끽했다

 

남편이 한국인 첫 맹인박사가 되었어도 

한국에 돌아가 강단에 설 기회가 없었다

맹인이 어떻게 눈 뜬 대학생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논문지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지독한 편견, 삶을 시험하는 굳건한 벽, 

 

벽과 편견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두드렸다

인디아나 주정부 교육부가 문을 열었다

문이 한 번 열리자 벽은 스스로 무너졌다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상원 인준을 받아 영예로운(Honorable)이 붙는

500명 안의 고위직에 임명됐다

 

눈물을 머금고 유학 떠날 때 뱃속에 있던

큰 아들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연방상원 법사위원회 고문변호사,

며느리도 의사와 변호사로 활약한다

 

▲     © 운영자

 

한국에서라면 가능했을까

너는 좋아서 결혼한다 해도 자식들을 생각해봐

아버지가 장님인데…하며

판사 의사 약사 대기업 간부에게 시집간 

친구들이 걱정한다며 비아냥대던 한국에서라면,

그 일은 맘에 두지 않기로 했다 

 

나를 내려놓고 

그대의 눈과 지팡이가 되니

그대는 남이 가지 않은 길 만들고

그대가 만든 길이 새로운 사람들 오가는

더 넓은 길로 이어진 것만 생각한다

 

나를 내려놓고

그대와 나의 아들들의 울타리 되니

그 아들들이 그대의 멋진 길 이어받아

그렇게 좋은 삶 일구었으면 되었다

 

나를 내려놓은 것이 

나를 더 높이 올라가게 했고

한국여성의 평균점수를 올려주었으니***

예순여덟의 짧은 삶 멋지게 살다 간

남편의 사랑이면 충분한 인생이었다****

 

▲   詩를 쓰건 인물에 관한 기사를 쓰건, 현장을 찾아 취재흘 해야 글이 나온다는 작가 홍찬선..지난해 가을 취재 여행에서....  © 운영자

 

 

* 석은옥 씨가 남편 강영우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 가운데 강영우 박사에 대한 묘사를 인용. 

** 누이동; 오빠와 누이를 오누이로 부르는데 누나와 남동생을 가리키는 말을 알지 못해 ‘누이동’이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다.  

*** 강영우 석은옥 부부가 유학을 떠난 지 6년 만인 1987년9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연세대 윤형섭 교수가 <조선일보>에 ‘평균점수’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에서.  

**** 강영우 박사는 2001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름으로 국무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분과위원장(차관보급)을 지냈다. 췌장암 투병생활을 하던 2011년에 전 재산 25만달러를 국제로터리재단평화센터에 평화장학금으로 기부했다. 

***** 석은옥(1942~);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대 영문학과 1학년 때 걸스카우트 봉사활동에 갔다가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중학생 강영우를 만났다. 부모의 반대와 친구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강영우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강영우(姜永祐, 1944. 1.6~2012. 2. 24)가 박사과정을 다니는 동안, 두 아들을 키우면서 남편의 뒷바라지에 전력을 기울였다. 

석은옥은 퍼듀대에서 교육학 석사를 받고, 인디애나주 공립학교 종신교사로 28년 동안 근무했다. 미국의 인명사전인 『Who's Who of American Women』과 『Who's Who in American Education』에 이름이 올랐다. 저서에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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