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자라서 우울하다고?> 그것은 사회적인 질병입니다”

여성이 우울한 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도, 여성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정운기자 | 기사입력 2021/05/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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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원래 우울하다고?…그것은 사회적인 질병입니다”

<여자라서 우울하다고?> 펴낸 이민아 교수 인터뷰

 

[yeowonnews.com=이정운기자] 2020년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내원한 20대 여성은 전년 대비 33.5% 늘어 4607명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자살시도자 가운데 20.4%가 20대 여성이었다. 다른 연령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였다.

 

지난해 우울증 등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20대 여성은 2016년에 견줘 144%나 늘었다. 이 역시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년 대비 43% 급증했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20대 여성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은 명확하지만, 원인에 대한 분석은 제각각이다. 일부는 성호르몬 특성상 여성의 감정 기복이 더 심하기 때문에 우울증에도 취약하다고 설명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슬픈 감정에 침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심리학적인 설명도 있다.

 

이같은 설명은 ‘여성은 생래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통념을 강화하고, 적당량의 항우울제와 심리적 치료요법이 여성 우울의 해결책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 <여자라서 우울하다고?>를 쓴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운영자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달 <여자라서 우울하다고? 우울은 왜 성불평등하게 찾아오는가>를 펴낸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통념이 원인과 결과를 뒤집었다고 본다. 이 교수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은 우울증 ‘원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여성들이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결과’라고 말한다. 여성의 우울은 사회적 질병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를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나 최근 악화하고 있는 성별 정신건강 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은 우울증에 취약하게 태어나지 않았다”어떻게 여성의 우울증을 소재로 책을 쓰게 되었나.

=최근 우울증이나 불안, 공황장애 등을 겪는 이들이 늘면서 책도 여러 권 나오고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런데 이런 논의 중 상당수는 우울증의 원인을 뇌가 기질적으로 약해서라든가, 심리적인 취약함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인 경우에는 더더욱 생물학적이거나 심리적인 취약함이 우울증의 원인인 것처럼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성이 본래 신체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한 존재가 아니고, 정신건강이 나빠지게 된 원인에는 여성의 삶을 둘러싼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원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성호르몬,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등을 이유로 여성이 남성보다 생래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설명을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적 요인도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사회적인 요인이 중요하다. 기존의 여성 우울에 대한 연구들은 뇌의 영향, 심리적인 영향, 사회적인 영향을 병렬해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원인도 있고, 저런 원인도 있어서 함께 여성 우울을 부른다는 입장이 아니다. 사회적인 원인이 명확하게 궁극적인 원인이고,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심리적인 특성과 같은 이유들은 매개변인으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이거나 심리적인 원인을 강조하면 여성이 원래 취약하게 태어났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생물학적, 심리학적인 설명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과 심리적 취약함은 사회적 원인에 이어 유발될 수 있고, 사실상 우울과 동시에 나타나거나 그 결과일 수도 있다.

 

이민아 교수는 책에서 첨단 뇌 영상장치가 일반인의 뇌와 우울증 환자 뇌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 일부에선 여성의 우울증이 많은 이유로 에스트로겐과 같은 난소 호르몬의 영향을 들지만, 생물학에서 호르몬의 영향에 대한 일관된 연구결과는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 우울 원인을 타고난 신경증과 내향성에서 찾는 심리학 주장들도 성별에 따른 성격 차이가 문화권마다, 나라마다 상이하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예를 들면, 캐나다 여성은 남성보다 신경증이 높지만 더 외향적이다. 백인 남성은 백인 여성보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만, 친화성은 아시아계 여성보다 높다.

 

이 교수는 “성호르몬의 차이가 없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으며 여성을 본질적으로 그러한 존재로 환원시켜 버린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태도가 “여성의 우울을 호르몬 탓으로 돌리고, 다른 사회적 문제들에 눈감게 한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사는 흑인은 백인보다 일반적으로 우울 수준이 높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정신건강의 수준이 낮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지위와 인종에 따른 정신건강 격차를 이야기할 때 누구도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 기복이나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취약성을 우선적인 원인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집단 간 건강불평등을 낳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적절한 영양섭취, 적당한 주거공간, 좋은 직장…. 사회학의 ‘근본원인론’은 이런 여러 원인들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의 원인’, 즉 근본원인을 계층·계급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라고 본다. 이 교수는 사회경제적 지위 못지않게 건강불평등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원인이 젠더라고 봤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별화된 생애과정(Gendered life course)을 살고, 젠더 차이가 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여자라서 우울하다고> 표지. 개마고원 제공     © 운영자


악화한 청년여성 정신건강…“불평등한 노동시장·성범죄 집단트라우마 때문”

여성 우울증 원인을 사회경제적 지위나 교육수준 등이 아닌 젠더 이슈를 중요 원인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남성과 비교하면 여전히 성별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훨씬 많은 제약을 받는 게 사실이다.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갖는지, 어떤 종류의 자원을 가졌는지, 얼마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는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고학력자일수록 정신건강에 유리하고 저학력이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우울증 비율이 더 높아진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집단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청년여성이 우울한 이유로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을 이유로 들었다.

=청년여성들이 목도하는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는 남학생보다 성적도 좋았고, 대학진학률도 훨씬 높았는데, 막상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할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가는 경우도 남학생에 비해 많다. 취업은 청년 전반의 문제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성별 격차가 있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강력범죄와 달리 꾸준히 증가하는 성범죄도 청년여성의 우울을 높이는 요인으로 봤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들은 세상이 위험하다는 이야기,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내재화하게 된다. 범죄피해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게 성범죄율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내재화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다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이것이 (우울증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자체장의 권력형 성폭력,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 굵직한 성범죄 이슈가 이어지지 않았나? 이런 이슈가 나오며 두려움을 내재화한 청년여성이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조차 보호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이것이 정신건강 측면에서 절망감, 우울감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본다.

 

우울증과 자살시도자 급증 요인에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영향도 있겠지만, (청년여성의 우울증 등의) 증가세는 2017년부터 발견된다. 코로나19가 본래 불리한 입장에 있던 사람들, 서비스 업종에 있다거나 직업적으로 불안정했던 사람들의 어려움을 증폭시킨 것은 맞는 것 같다.

 

왜 2017년이 기점이 될까.

=엄밀한 분석이 필요한 과제다. 그때부터 성범죄가 크게 이슈화된 면이 있다. 나아가 조심스러운 추측이긴 한데, 2017년을 기점으로 대졸자 취업률의 성별 격차가 3%대 이상으로 벌어진다. 그 이전 5년간은 성별취업률 차이가 계속 줄어들어서 2016년에는 2.9%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2017년에 다시 3%로 격차가 늘어난 뒤, 2018년, 2019년에 연이어 계속 증가한다. 숫자는 3%로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대졸자의 수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격차가)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를 보면,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의 성별취업률 격차는 2016년까지 꾸준히 줄어 2.6%로 좁혀진다. 그런데 이 격차가 2017년에 다시 3%가 됐고, 2018년에는 3.6%, 19년에는 3.8%를 기록했다. 2019년 남성 졸업자의 취업률은 69%, 여성 졸업자 취업률은 65.2%였다.

 

정치권 등에서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성차별적 대우를 받은 적이 없고, 군 문제나 여성 할당제 등으로 청년남성들이 오히려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대졸자 성별취업률 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교사와 공무원 등 일부 직군에서는 여성이 더 많이 뽑히고 동등하게 경쟁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회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여전히 남성이 더 유리하다. 남성과 여성의 취업 후 상황을 비교해보면 같은 전공과 학력 수준에서도 여성의 소득수준이 훨씬 낮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있다. 취업의 문턱을 넘어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든 상황을 상상해보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지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돌봄노동을 동등하게 부담하고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일부 청년남성 입장에서는) 가정 내에서 남성이 예전만큼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우대받은 기억이 없다 보니, 노동시장에서의 혜택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남성 생계부양자 규범은 남성도 우울하게 한다”

20대 여성 못지않게 20대 남성 정신건강에 들어온 적신호도 분명하다. 2020년 남성 자살시도자는 대부분 연령대에서 조금씩 줄었는데, 유일하게 20대 남성만 전년 대비 19%가량 늘었다. 지난해 우울증 등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20대 남성은 2016년에 비해 83.2%가 늘었다. 1020 여성에 이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하게 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청년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배가량 많다는 점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주의해야 할 것은 남성의 자살이 가치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을 병렬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한 부분이 있다. 여성은 우울증, 자살 생각, 계획, 시도 비율이 모두 남성보다 높다. 다만 남성은 자살을 할 때 훨씬 공격적인 수단을 택하기 때문에 자살을 ‘완료’하는 비율이 여성보다 많다.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남성의 자살도 중요한 일이지만, 청년 여성들이 정신적으로 압력을 느끼는 상황을 없는 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청년여성 못지않게 심각한 청년남성의 정신건강 적신호 원인이 ‘남성 생계부양자 규범’ 등 전통적인 성 역할 규범에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에서 성 역할 규범과 남성의 우울 간 관계를 살펴본 연구가 있다. 결과를 보면, 보수적인 남성이 더 우울했다. 남성이 당연히 밖에서 일해야 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오늘날 여성들의 약진이 자신의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 이러한 규범에 청년남성들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보수적인 청년남성일수록 더 화가 많이 나고 우울 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사실 20대 남성들에게도 새로운 성 역할 규범과 언어가 필요한데, 그게 부재한 상태에서 여성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발생하는 불안과 긴장이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경쟁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고, 아이를 부부가 공평하게 돌봐야 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덜 벌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우울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이민아 교수는 책 속에서 성별에 따른 정신건강 격차를 줄일 방법에 힌트가 될 수 있다면서 유럽 23개국 연구결과를 인용한다. 성평등한 나라일수록 여성과 남성 사이의 우울 수준 차이가 작고 사회 전반 우울 수준도 낮다. 노르웨이·스위스·아일랜드와 같이 여성의 경제참여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높은 나라들이다. 반면, 동유럽과 남유럽처럼 여성의 가정 내 통제력이 낮고 전통적인 성 역할 규범이 공고한 나라는 평균 우울 수준이 높고,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우울 수준이 높다. 이 교수는 책에서 “뻔하게 들리지만 이루기 어려운 길, 타고난 성별 때문에 자원·기회·경제적 참여가 제한되지 않고, 전통적 성 역할 규범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성평등한 사회’에 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울 원인 되는 사회 문제 함께 고민했으면”

우울증 진료환자나 자살시도자 숫자가 증가하면서, 항우울제 처방 등을 해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회적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차별 문제나 구조적 요인을 교정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예방 대책이 처음으로 나온 게 2004년이다. 당시 보고서에서도 일단 급하니까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대책을 세운다.

 

16년이 지났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건강이 좋아졌나. 항우울제 소비량은 매년 증가 추세다. 사람들이 우울증을 덜 느끼고 전반적인 행복감이 높아졌는지 질문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울증은 사회 문제인데, 마음을 비우거나 약을 먹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이민아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내면에 너무 침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울의 원인을 ‘내가 그렇게 타고난 문제’로, 내면의 문제로 돌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우울의 원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려 하기 보다는 고개를 들어 외부를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꼭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청년들을 우울로 이끄는 공통의 경험, 나의 삶을 구조화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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