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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어릴적 내 인생의 첫책임은 엄마였다 <구자관의 연재 칼럼 2>

그가 인생에서 처음 배운 말이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처음 실천한 것이 '책임'인 것은 확실하다

구자관 | 기사입력 2021/06/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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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사원 구자관의 연재 칼럼 2 /책임

 어릴 적 내 인생의 첫책임은 우리 엄마였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책임' 이 나보다  앞장 서서

 

        창업? 변가 딖으러 다니는 사람이 창업은 무슨? 

[ywowonnews.com=구자관] 집에서 화장실 청소에 필요한, 변기를 닦아낼 걸레와 빗자루를 만들 때부터, 책임은 이미 나를 따라붙었다. 깡통을 구해서 손잡이를 마련할 때부터 책임은 시작되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책임이 따라 온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은, 나보다 먼저 그 자리에 와 있곤 했다. 

 

특히 청소를 하다가 변기가 깨지기라도 하면 그건 100% 내 책임이다. 책임지는 일이 없으려면 조심조심 잘해야 한다. 그러니까 ‘책임’으로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본업이 책임이다. 기억이 안 나는 일에도 책임은 따른다. 창립기념일이 언제였는지, 창업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일에도 책임은 따른다. 

 

▲   삼구는 그의 책임이고, 책임은 그의 전재산이고...아니 구자관회장 자신의 이름이 창업 아닐까?   © 운영자

 

혼자 하는데도 책임은 따라 붙는다. 혼자 하는 일이라고 해서 책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기업을 해선 안된다. 기업은 그 대표가 자기 책임하에 여러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람, 자금, 토지 등이 있어야 성립된다는데, 그 세가지가 다 없는데도 책임은 있다. 세 가지는 구비하지 못했어도 한 가지는 구비할 수 있다. 책임이다. 비록 혼자지 한 일이었지만,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창업이 몇 년도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그 질문 받을 적마다 부끄럽다. 창업이 언제인지 몰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변가 닦으러 다니는 사람이 창업은 무슨 창업? 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하는 데는 책임이 따르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항상 부끄러워 하려고 애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구 잘못이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는 책임의식의 정체

회사라는 이름이 생기고 사원도 생긴 이후에는 책임을 더 져야 한다. 책임 질 사람이, 사원 중엔 없으니까 누가 대표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창업주니까 사원들을 대표해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책임대표사원’이 됐다. ‘대표책임사원’이 아니고, ‘책임대표사원’이다. 책임을 ‘대표사원’ 앞에다가 붙였다.  

 

“잘못한 모든 책임 내가 지겠다.”는 생각, 또는 “누구 잘못이든 모든 책임 내가 지겠다.” 는 자의식에 너무 빠진 것 아니냐고 지적한 사람도 있지만, 사실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책임’이라면 당연히 ‘책임사원’ 돼야 한다. 기업에서 잘못된 것은, 우선 사장 책임이다. 그 다음은 따질 것도 없다. 물론 너무 ‘책임’에 사로잡힌, ‘책임의 노예’ 아니냐는 지적도 받는다. 

 

▲    지금의 사무실이 아닌 대방동 구사옥의 사원 휴계실에 가끋 들려서 쉬기도 하는 구회장.. © 운영자

 

그러나 노예는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상관 없이, 강제로 하는 일이니까. 노예에겐 책임이 없다. 스스로 앞장 서서 하는 사람에겐 책임이 있지만,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노예에겐 책임의식이 없다. 그래서 “삼구의 역사는 책임의 역사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네’라고만 대답하지는 않는다. “참 잘 지적하셨습니다.”라는 감사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책임은 어떤 뜻에서 감사하는 마음이다. 책임에는 반드시 ‘감사합니다’가 따르니까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 사흘 굶은 자식들을 위해 엄마는...

내 명함을 받은 모든 사람이 “사장님이(또는 회장님이) 왜 책임사원입니까?”라는 질문을 한 건 아니지만, 질문을 안 했다고 그 사람이 “왜 책임사원입니까?”라는 의문을 안 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눈치로 보면, 나하고 명함을 주고받은 사럼의 거의 전부가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 질문 안 한 분들은 젊잖은 분들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니 그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도록 원인 제공 한 것은 나 본인이니까, 그 질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내 생애 ‘첫 책임’을 가끔 생각한다. 그때 사흘을 굶었다. 사흘을 굶으니까 엄마가, 어느날 이른 새벽에 외할아버지 밭에 가서 조(좁쌀)를 따왔다. 그걸로 밥을 해서 둘러앉아 먹고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불쑥..... 엄마는 밥그릇을 얼른 밥상 밑으로 감추셨다. 감추셨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마 다 알고 계셨을 듯....

 

그때 나는 맹세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엄마가 외할아버지 밭에 가서 조를 따오지 않게 하겠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주먹 불끈 쥐었다. 그 때 내 인생에 처음 ‘책임’이 등장한다. 물론 엄마는 자식들이 굶는 것을 보다 못해,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때문에.....그러니까 나는 자식으로서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책임을 내 것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  구회장의 집무실 표시..회장실이나 사장실이 아니고 '책임 대표 사원실 '인데..... © 운영자

 

     국가지도자의 책임의식과 도산선생의 생애

그런 시절 우리의 가난을 바꿔 놓은 사람이 등장한다. 박정희대통령이다. 그 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군사구테타를 일으킨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고 애쓴 사람이다. 우리들의 오랜 전통인 가난을 물리치는 일에 잎장 섰다.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선두에 서서 역사를 이끄는 일로 다하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우나 발전 희망이 있는 기업에 자금을 밀어주는 등, 그 시대엔 정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을 마다 않고 짊어졌다. 그 시대의 역사 속에 책임 질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선 먹고 살아야 할 일부터 해결해야 할 시대에, 박정희는 자기 책임을 다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실제로 책임을 졌다고 본다. 국가 지도자의 그 강단 있고 파워플한 책임의식 때문에 우리의 역사는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는 앞을 내다보았을까? 시대를 앞선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할 책임이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지도자는, 역사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하고 퇴장한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았느냐고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사력을 다한 것만은 사실이다.   

 

▲ 여간해선 외부 강의에 나서지 않는 구회장. 회사 일도 벅찬데 강의에 나설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 운영자

 

도산 안창호선생의 통합과 정직의 생애는 항상 책임을 강조한다. 도산선생의 통합에 우리는 항상 감동한다. 어려서도, 거짓말을 했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했던 도산선생. 그렇게 정직하면 보호받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러나 역사는 우리를 보호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역사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다만 도산선앵의 뜻이 너무 존경스러워서, 도산아카데미의 이사장 자리를 맡았다. 도산의 책임이, 깡그리 내 책임으로 돌아와도 다 받아들일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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